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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화칼럼
삼천포愛 빠지다
사천의 발전은 연리지처럼 둘로 나뉘여서 하나가 되는 사천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나는 말해왔다 사천은 항공산업도시로 삼천포는 관광생태도시로 일과 쉼이 있는 도시로 발전시켜야 ...... 봉화칼럼 전체 리스트 보기
 
 
「장구섬 항해」의 추억

우리 집 (해태거리 내리막 끝자락 놀이터 옆) 문간방으로 새로 이사 온 내 또래 남자 아이와 나는 어느 날, 서리 얼음공장 앞 부둣가로 달려 갔다.
내가 중학2학년 때의 일이니 지금부터 64년 전, 고향에 얽힌 어린 시절의 추억을 더듬어 본다.
밧줄에 묶인 채 잔잔한 파도 위로 출렁거리고 있는 여러 척의 뗀마<*>들 중에 마음에 드는 배의 밧줄을 풀어 우리는 장구섬을 향해 노를 저어 나아갔으니 남의 배를 무단 점유한 일탈행위였던 것이다.
내 고향 삼천포 앞바다 장구섬은 한 가운데가 개미허리처럼 옴쏙하게 파여 있는가 하면 그 양쪽으로 야트막한 능선을 이룬 두 개의 봉우리가 마치 여자의 젖가슴처럼 다소곳하게 솟아 있고 그 앞쪽으로는 하얀 모래가 수줍은 듯 정갈하게 펼쳐져 있는 아담하고 평화로운 무인도이다.
조개 껍질을 채집해 오라는 여름방학 숙제를 명분으로 삼았지만 내심으로는 장거리 노 젓기를 해 보고 싶은 모험심으로 두 소년의 의기가 투합했던 것이다.
친구는 섬에서 이사 온 아이여서 노젓기에 익숙했었고, 나는 언제 어떻게 배웠는지 노젓기가 너무도 재미있어 기회를 노리는 편이었다.
되돌아보면 나는 무엇인가 기계적 장치를 스스로 조종해 보는 행위에 어릴 적부터 자못 흥미를 느껴 자전거 배우기에도 열을 올렸고, 지금도 손자들과 즐기는 스키가 겨울철의 내 낭만이다. 신혼 초 낙동강변의 처갓집에 간 걸음에 강가에 나룻배를 띄우는 멋을 부려보기도 했다. 오오사카지점 근무시절에는 리조트 사업하는 거래처의 초대로 요트의 조타수가 되어 세토나이카이 해상을 잠시 항해해 본 마도로스 추억도 있으니 전생에 내 직업이 뱃사공이었을까?
어째든 선착장을 떠난 우리는 두근거리는 마음도 잠시, 어느새 목적지에 당도하자 섬 가장자리, 완만하게 경사진 쪽으로 배를 끌어 올려놓고 천연의 모래밭을 오가며 형형색색의 조개 껍질들을 골라 놓은 다음, 넓은 바다를 조망(?)하고 있었는가 싶었는데 갑자기 하늘이 어두컴컴해지고 바람이 거세지면서 파도가 거칠게 일기 시작했다.
우리는 서둘러 배에 올라 노를 젓기 시작했는데 파도를 거슬러 나아가는 것이 너무도 힘겨웠고 마치 배가 파도 위로 솟았다가 물 속으로 푸-욱 가라 앉으려는 듯 하여 겁에 질리기 시작했다.
공포심을 침묵으로 억누르며 있는 힘을 다해 노질을 하고 있는데 저만치 통통배 기선 한 척이 가느다란 연기를 내뿜으면서 다가오고 있었다.
혹시 우리에게 도움의 손길이라도 주려나 하는 막연한 추측으로 배위의 두 선원에게 은근한 시선을 보냈으나 그들은 얼굴 가득 느긋한 웃음을 지으며 말없이 우리 곁을 지나 동쪽의 넓은 바다로 유유히 사라져 가버리는 것이었다.
그 순간 그 웃음의 의미가 도대체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 뇌리를 잠깐 스쳐 지나갔으나 그 뿐이었고 우리는 자력 생존의 사투에 열중해야만 했다. 웬일인지 그 후에도 그 미소가 몇 번인가 떠 올랐고 지금도 내 뇌리에 생생히 각인되어 있다.
겁에 질린 우리의 표정을 본 그들이 ‘그 정도 파도는 안심해도 된다’는 신호를 보내 준 것이었을까, 아니면 ‘네놈들이 간도 크구나. 장차 뱃놈 될 기질이 확연하다!’ 는 칭찬이나 격려를 흘려 보내 주었던 것이었을까 하고 의문을 접었던 기억이 난다.
어찌되었건 배는 힘겹게 조금씩 전진해 나아갔으나 아무리 애를 써도 서리 얼음 공장 쪽으로 방향이 잡히지를 않고 동쪽으로 밀려 가고 있었다. 우리는 결국 어디가 되었건 육지에 도달하고 봐야 한다고 마음을 고쳐 먹었다.
결국은 천신만고끝에 간신히 노산 끄트머리에 당도하는데 성공하였다. 목숨을 구했다는 안도감에 가슴을 쓸어 내리고 잠시 머뭇거렸을 뿐, 배를 찾아 분통한 심정으로 헤메었을 주인의 심사를 헤아리지 못하고 그 곳을 떠나 집으로 향하고 말았다.
노산끄트머리 바윗돌에 덩그러니 매달아 둔 그 뗀마가 주인의 손에 무사히 돌아 갔을까?
대방 너머 요트 정박장에 작은 요트 한 척을 마련하여 오가는 길손에게 선심이라도 베풀면 지은 죄를 조금은 사해 받을까? 천지신명께 축원해 본다.
<*>일본어 ‘전마선’의준말로, 노의 허리에 있는 작은 구멍에다가 배 뒷전에 달린‘노좆’이라는 나무 뭇을 끼워서 이를 축으로 삼아 두 손으로 노를 돌려 저어 바닷물을 밀고 나아가는데 주로 가까운 바다낚시에 많이 사용하고 평상시에는 부둣가에 밧줄로 매달아둔채 주인은 가버리는 것이 그 당시의 인심이었다.
일본어의 원래 뜻은 본선과 부두 사이를 오가며 사람과 화물을 운반하는 거룻배를 의미하는데 우리는 삼천포 부둣가에서 실제로 그 광경을 여러 번 목격하였다.
(덧붙이는 회고담)
그 당시 여수와 부산을 오가는 정기 여객선이 남해안의 주된 해상 교통수단이었고 삼천포는 몇 군데 기항지 (남해, 통영, 장승포등)중의 한 군데였다. 그런데 같은 시간대에 두 선박회사가 제각기 저마다의 부두에 배를 대어 손님을 싣고 떠나면서 서로 경쟁을 하였다.
우리들은 배가 들어 오는 시간대에 부두로 가서 어느 배가 빨리 들어오는지 친구들끼리 내기를 걸기 일쑤였다. 하얀 파도를 일으키며 거의 나란히 배가 입항하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할 무렵부터 ‘갑성호’, ‘창경호’, ‘태안호’ 등 배 이름을 외치며 긴장하기 시작하였다.
재미있는 것은 배가 선착장을 막 떠나자 마자 간발의 차로 부두에 늦게 도착하는 지각 손님들이 있었다. 이런 때를 대비해서 대기하고 있던 예의 ‘뗀마’가 민첩하게 이 손님(들)을 태우고 최대한 빨리 노를 저어 여객선을 향해간다.
과연 승선에 성공할 것인가? 가슴을 조리며 결과를 지켜본다
큰 여객선은 정박했던 부두에서 뒷걸음질을 해서 바다 가운데로 천천히 방향을 돌리기까지 시간이 걸리므로 대개의 경우 성공하고 우리는 안도의 숨을 돌렸던 것이다.
낭만의 삼천포 항이여! 천진난만했던 우리들의 동심을 영원히 간직해다오!

강형석(삼천포고등학교 출신)
필자 경력
△학창시절 이름은 강호일
△삼천포 초등학교 제35회 졸업
△삼천포 중학교, 고등학교 공히 제 8회 졸업후 부산대학 졸업
△경 력
·1966년 한국상업은행 입행
·1998년 상기 강남영업본부 부장
·1999년 (일본계은행인) 다이이치 칸교은행 서울지점 및 미즈호 은행 서울지점 준법감시인 근무
·2011년 상기 은행 퇴직후 현재는 경기도 안성에서 과수를 가꾸며 전원생활

2023년 02월 09일 10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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