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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당(卍黨) 다솔사, 일제에 저항한 불교 비밀결사조직본부 』 1930년 5월 해인사에서 비밀결사조직이 생겼다. 만당이었다. 일제에 저항하는 불교계의 인물들이 조용히 집결되었다. 그들은 이름을 숨기면서 항일운동을 하였다.
그러다, 다음 해 대구 경찰서에서 해인사를 급습하여 해체시켰다. 이 만당에 주요인물로 최범술스님이 있었다. 그는 그해 다솔사에 만당의 본부를 옮겼다. 다솔사 요사채에 본부를 두고 독립운동을 계속하면서, 군자금을 모아 서울에 거주하는 한용운에게 보내면, 그는 상해나 만주로 보냈다.
다솔사에 거주하는 인물로 최범술 외에 김범부, 김동리가 중심이 되어 있었다. 많은 애국지사들이 은밀하고 조용하게 활동하였다. 그 중, 행동책으로 김철수가 다솔사를 왕래하면서 군자금을 모았다. 그는 고려대학교을 건립한 인촌 김성수의 동생이었다.
김철수는 자주 광주 무등산에서 허백련 화백으로부터 군자금을 받아 다솔사로 와서 최범술에게 건네주기도 하였다. 많은 분이 직·간접적으로 후원하였다. 가끔 다솔사를 방문하였던 한용운 선생이 환갑이 되던 1938년 서울에서 환갑행사를 마치고, 최범술스님의 초청으로 다솔사에서 다시 환갑행사를 한 후, 기념 식수를 하였는데, 그 후 그 나무는 고사하게 되어 다시 식수를 하여 현재 다솔사에 푸르게 살아있다.
사천문화연구소에서는 만당에 대하여 자료를 수집하고 이를 기억하는 관계자의 증언을 녹음하여 채록하였고, 만당 해체 이후 이들의 행적을 찾기 위해 만당의 후손들을 만나는 일들을 진행하던 중, 연구소가 폐쇄되어 연구 활동이 중지되었다.
사천에 불교의 전래는 학문적으로 아직 완전하게 정립되지 않고 많은 연구자들이 조사하고 정리를 하는 중이다. 사찰에서 주장하는 불교전래와 학계에서 주장하는 불교전래가 아직 합일점을 찾지 못하고 있기에 앞으로도 연구활동은 계속될 것이다.
사찰의 기본주장은 사찰내에 건립된 사적비의 기록을 중시하고 있다. 그러나 학계에서는 사적비의 기록내용과 사적비의 건립연대가 맞지 않기 때문에 사적비의 내용을 쉽게 인정하지 않는다. 예컨대, 다솔사의 사적비에 기록된 다솔사 건립연대와 사적비를 세웠던 연대는 거의 천년의 기간이 있기 때문이다. 구룡사 사적비에는 구룡사가 5세기 눌지왕대라고 기록되어 있으나, 사적비를 건립한 연대는 조선시대이기에 이 또한 논란이 생길 수 있다.
사천에는 부용선사가 태어난 곳이다. 그는 임진왜란 때 왜군과 대항하여 싸운 서산대사의 스승이다. 일제에 맞서 당당히 싸운 우리 선조들의 기운이 사천하늘과 땅과 바다를 도도히 덮고 있다. 이를 반드시 기억하고 전승해 나가야 하는 책무는 우리의 몫이다.
전)경상남도 문화재 전문위원 이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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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01월 16일 10시 00분 Copyright (c) 1999 사천신문 Co.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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