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천을 디자인하다 ①」 시민의 건강과 안전에서 출발하는 도시 』 도시의 수준은 의외로 일상의 작은 장면에서 드러난다. 비 내리는 저녁,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어르신의 발끝이 불안하게 흔들리고, 버스정류장 바닥의 물웅덩이를 피해 시민들이 차도 쪽으로 비켜서며, 외지인이 표지판과 휴대전화 화면을 번갈아 바라보는 순간이 그렇다. 특별한 사건은 아니다. 그러나 바로 이런 장면들이 반복될 때, 우리는 그 도시가 시민의 몸과 시간을 얼마나 세심하게 배려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우리는 도시 발전을 말할 때 대개 개발, 예산, 관광, 투자 같은 큰 사업의 언어를 먼저 꺼낸다. 물론 그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시민의 건강과 안전을 좌우하는 것은 거창한 시설보다 매일 통과하는 생활의 디테일이다. 걷는 길의 단차, 횡단보도의 대기 환경, 정류장의 차양과 의자, 야간 조도의 균형, 안내표지의 글자 크기와 배치, 공공시설의 접근 동선이 그렇다. 이 기본이 허술하면 도시는 겉으로 성장해도 시민을 안으로부터 지치게 만든다.
여기서 필요한 것이 디자인의 관점이며, 더 정확히는 인간공학의 관점이다. 인간공학은 산업 현장에만 머무는 기술이 아니다. 제품, 시각, 산업안전, 행정 시스템 전반에 폭넓게 적용된다. 도시야말로 가장 큰 인간공학의 현장이다. 사람은 같은 공간을 이용해도 나이와 시력, 보행 속도, 신체 능력, 인지 습관에 따라 전혀 다르게 경험한다. 젊은 사람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작은 턱이 고령자에게는 낙상 위험이 되고, 익숙한 주민에게는 문제없는 표지체계가 외지인에게는 방향 상실과 시간 손실이 된다. 상당수의 불편은 개인 적응의 문제가 아니라 설계의 문제이며, 따라서 개선 가능한 문제다.
사천이 앞으로 더 좋아지기 위해 가장 먼저 점검해야 할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크게 짓는 도시’보다 ‘잘 쓰이게 만드는 도시’로 방향을 분명히 해야 한다. 특히 시민의 건강과 안전을 기준으로 생활 동선을 다시 보아야 한다. 보행로, 횡단보도, 정류장, 시장 주변, 공공청사 접근로, 야간 보행구간부터 점검할 필요가 있다. 기준은 결코 복잡하지 않다. 셉테드(CPTED)는 범죄를 예방하는 환경설계로, 어두운 골목의 조명과 사각지대 제거 같은 조치를 말한다. 유니버셜 디자인은 어린이, 고령자, 장애인, 비장애인 누구나 불편 없이 이용하도록 설계하는 원칙이다. 베리어 프리는 말 그대로 턱과 계단, 좁은 통로 같은 물리적 장벽을 없애 이동의 불편을 줄이는 접근이다. 결국 핵심은 하나다. 시민이 덜 다치고, 덜 피곤하고, 덜 헤매게 만드는가 하는 점이다.
나는 사천시가 ‘생활불편 디자인 점검’ 같은 상시 체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시민이 자주 이용하는 구간을 대상으로 걷기·기다리기·찾기·쉬기의 관점에서 불편과 위험 요소를 조사하고, 이용 빈도와 위험도를 기준으로 개선 순서를 정하는 방식이다. 이 과정은 행정의 점검만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시민 제보, 현장 관찰, 전문가 진단이 함께 작동해야 한다.
건강과 안전은 복지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도시 경쟁력의 문제다. 시민이 안심하고 걷지 못하는 도시에 정주 만족이 높을 수 없고, 방문객이 편하게 이동하지 못하는 도시에 재방문 의사가 커질 수 없다. 도시의 품격은 거창한 선언이 아니다. 이는 시민의 몸을 먼저 배려하는 설계에서 나온다. 사천의 변화는 우리가 매일 지나치는 길과 정류장, 표지판을 다시 설계하는 일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도시는 선언으로 바뀌지 않는다. 사람의 삶을 기준으로 다시 설계할 때 비로소 바뀐다.
윤정일 논설위원
제품디자인/인간공학 기술사 2026년 03월 12일 10시 14분 Copyright (c) 1999 사천신문 Co. All rights reserv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