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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흥선대원군① 』 조선 오백년 역사에 4명의 대원군이 있었다. 대원군이란 왕위의 계승권자가 아닌 왕족이 왕이 되면 그 왕의 아버지는 살아 있던지 죽었던지 간에 대원군이 되는 것이다.
물론 작위(君)가 있는 왕족은 바로 대원군으로 봉해지나 작위가 없는 왕족은 작위를 거쳐서 대원군이 되었다. 선조, 인조, 철종, 고종 이 네 왕의 아버지가 대원군이 되었거나 대원군으로 추존 되었다. 사후에는 왕으로 추봉 되기도 하였다.
고종의 아버지인 흥선군만 생전에 대원군이 되었고 나머지 세명의 대원군은 사후(死後)에 추존이 되었다. 그리고 흥선대원군은 조선의 마지막 대원군이기도 하다. 이러한 연유로 우리는 대원군하면 흥선대원군을 가르키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또한 우리가 알고 있는 흥선대원군의 이미지는 1933년 4월 26일부터 1934년 2월 15일까지 조선일보에 연재된 김동인선생의 소설 "운현궁의봄"과 그 뒤 1960년대에 유주현선생의 장편소설 "대원군"을 통해 널리 알려졌기 때문에 사실과는 무관하게 각인이 되어 버린 부분이 상당히 많이 있다. 이 작품들이 워낙 정교하게 사실처럼 잘 묘사 되었고 대단한 필력이다 보니 후의 다른 작가들이 이 소설을 기반으로 해서 후속 작품들을 창작 하여 가상이 사실을 덮어버린 것 같은 느낌도 든다.
흥선군 이하응은 1821년 출생하여 1898년 사망 했으니 향년이 77세로 당시로는 상당히 장수를한 편이었으며 사는 날 동안 파노라마 같은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인평대군의 6대손인 남연군의 넷째 아들로 태어 났으며 8세에 형이 사망을 하였고, 12세에 어머니를, 19세에 아버지를 여의는 등 어린 날은 매우 불운하게 보냈다고 볼 수도 있다. 어릴때는 아버지 남연군으로부터 한학을 배웠고 30대에 이르러서는 인척인 추사 김정희 문하에 들어가 그림과 글씨를 배웠다. 후일에 이때 배운 묵화는 당시에도 상당히 알아주는 수준이었고 특히 난을 치는 솜씨는 신묘하다 할 정도로 인정 받는 화가이자 서예가였다. 당시 권문 세도가였던 풍양조씨, 양주조씨, 신 안동김씨 家에 이 그림과 글씨를 상납 함으로써 연명을 도모 하기도 하였다.
13세때 외척인 민씨 부인과 결혼을 하여 가정을 이루었어 3남3녀의 자녀를 낳았고 차남인 이재황(고종)을 12세에 왕좌에 앉혀 섭정 정치를 하였다. 서장자를 낳은 소실도 있었고 오랜 기간 함께 했던 기생 출생 추선이라는 첩도 두었다. 그의 외모는 키가 보통 사람보다 작고 왜소해서 늘 놀림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지만 그는 전혀 개의치 않았고 오히려 늘 당당했으며 눈빛이 형형하게 살아 있어 사람들은 참 기이한 사람이라 여겼다.
동재 김정규 논설위원 2026년 04월 16일 10시 24분 Copyright (c) 1999 사천신문 Co.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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