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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필-어느 봄날의 일기 』 지인의 아들이 교통사고로 어깨를 다쳐 수술을 하고 병원에 입원해 있다 해서 병문안을 가려고 아내와 함께 집을 나섰다. 과거에는 병문안을 갈때 꽃이나 음료수 등을 가지고 갔는데 요즘은 대개 봉투에 현금 얼마를 담아 전달 한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 형편에 현금은 어렵고 그렇다고 빈손으로 가기는 그렇고 해서 아내가 집에서 만든 카스테라를 전하기로 했다. 아내의 음식 만드는 솜씨는 그저 그런 편인데 카스테라를 잘 만드는 것을 보면 참 신통하다. 밥솥으로 카스테라를 곧 잘 만든다. 일주일에 서너개 이상 만들어 시골 동네에 혼자 계시는 어르신들께 갖다 드리기도 한다.
아파트 단지를 나서자 길가 벚나무 가로수에 꽃이 만개해 우리를 즐겁게 한다. 오늘 병문안 갈 병원은 우리집에서 16km정도 거리인 삼천포에 있는 준종합병원이다. 삼천포로 가는 길은 왕복 4차선의 메인 도로와 2차선의 구 도로가 있는데 오늘은 구 도로로 가기로 했다. 구 도로는 커브길이 많아 조금 불편해도 주변의 경치를 구경 하기가 좋아 아내는 늘 이 도로를 선호하였다. 같은 사천시라도 삼천포는 내가 사는 사천과는 사뭇 정서가 다른 권역이다. 사천시는 1995년 사천군과 삼천포시가 행정통합을 통해서 만들어진 도시이다. 그래서 도심도 사천과 삼천포 두개의 권역으로 나누어 진다. 통합한지가 수십년이 흘렀지만 지금도 지역간 약간의 다른 정서가 있다.
재미있는 것은 삼천포 사람들은 사천사람들을 촌 사람이라고 은근히 아래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 이유는 통합 당시 삼천포는 명색이 시였고 수산업의 호황으로 경제 수준이 상당히 높았으며 상대적으로 사천은 군으로 도심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시골이었다. 물론 지금은 비슷비슷한 수준이다. 사천에는 대형 산업단지가 있고 진주가 인접해 있어 팽창속도가 상당히 빠른 상황이다 보니 삼천포 사람들은 사천을 조금 부러워 하기도 하고 약간의 질투도 있는듯 하다. 그러나 그것은 눈에 띄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서 느끼는 정서일 뿐이지 서로 이질감이나 불편함은 전혀 없다.
중간쯤 가다 갑자기 아내가 세무서에 잠깐 들렀다 가자고 주문을 한다. 사천과 삼천포 중간쯤 한적한 곳에 시청과 여러 행정관서들이 모여 있다. 세무서에 가자는 이유는 체납된 세금이 있어서다. 사업의 실패로 제법 큰 금액의 국세가 체납되어 있는데 내가 운영하던 사업체가 법인이지만 가족들이 주주로 구성된 과점주주 법인이다 보니 세금이 장기간 체납되면 제2납세 의무자인 주주들에게 지분율 대로 부과가 된다. 때문에 법인의 세금이 나와 아내 두 아들 등 4명에게 각각 나누어 부과가 된 것이다. 아들들에게 짐을 지우기가 미안해서 우리가 매달 조금씩 갚아 나가고 있는데 가상계좌의 기한이 만료돼 다시 갱신해야 된다고 해서 지나는 길에 들리면 기름값과 시간을 아낄수 있으니 들렸다 가자 한 것이다. 체납된 세금 때문에 관공서에 갈때면 범죄자가 된 기분이라 괜히 자존심도 상하고 주눅이 들기도 한다.
병윈에 도착을 했다. 시계를 보니 점심때가 다 되어가 마음이 바빠진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 버턴을 눌렀는데 작동이 안된다. 나와서 다른 엘리베이터를 탔지만 역시 마찬가지이다. 3층이니 걸어서 가도 되겠다 싶어 계단실로 갔는데 여기도 문이 열리지 않는다. 난감하여 아내를 쳐다보며 "내가 돈이 없다고 이것들도 날 무시하네 "라고 농담을 하였다. 알고보니 환자나 보호자가 손목에 차고 있는 QR코를 갖다 대어야 작동이 되는 것이다. 디지털 문화가 참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내 스스로가 많이 도태되어 살고 있는것 같아 조금은 허탈감이 느껴진다.
환자는 젊은 이십대 중반의 청년으로 몇 년 전부터 하우스 농사를 지으며 청년농부로 살고 있다 한다. 많은 젊은이들이 기피하는 농부의 길을 택하였다는 것이 참 대견하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부모님과 함께 살며 치매에 걸리신 할머니의 대소변까지 받아내며 깨끗이 뒷처리까지 하고 집안 대소사에도 아버지를 따라 꼭 참석하는 등 요즘 찾아보기 힘든 반듯한 젊은이다. 빠른 쾌유를 비는 기도와 위로를 해주고 병원을 나섰다.
어느듯 점심때가 되었다. 아내에게 모처럼 나왔으니 외식을 하자고 하자 아내가 난감해 한다. 아마도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는 눈치다. 얼른 회제를 돌렸다. 근처에 짜장면 잘하는 집이 있다던데 짜장면을 먹자고 제안했다. 그제서야 아내의 표정이 조금 풀린다. 중국집은 손님들로 꽉 차있다. 요즘은 주문도 셀프 디지털이다. 메뉴가 다양하게 있지만 갈등 생기지 않게 쳐다보지 않고 그냥 7000원짜리 짜장면 두 그릇을 시켰다. 서빙 로봇이 분주하게 돌아다닌다. 드디어 로봇이 주문한 짜장면을 가지고 왔다. 짜장면의 맛이 기가 막힌다. 도대체 얼만에 먹는 짜장면인가. 수타라 더 맛있는지도 모르겠다. 제대로 씹지도 않고 허겁지겁 삼킨다. 아내의 잔소리에도 불구하고 숟가락으로 남은 소스까지 싹 먹어치웠다. 어떤 진수성찬 보다 맛있게 먹었다. 어릴때 처음 먹었던 짜장면 맛이 일등이고 중학교 다닐때 중국집 예쁜 누나 보러가서 먹었던 상록수반점이 이등이고 오늘 먹은 짜장면 맛이 삼등이다.
집으로 가는 길을 바닷가 길을 택하였다. 배가 부르니 마음이 한층 여유로워져 좋은 경치가 보이면 차를 세우고 느긋하게 사진도 찍었다. 아내는 햇빛을 병적으로 싫어해서 차에서 내리지 않는다. 아내가 갑자기 생각이 났는지 교회 교우중에 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를 받고 있는 여집사님이 있는데 심방을 가보자고 한다. 마침 집으로 가는 바닷가 길에서 카페를 하고 있는 분이라 가는 길에 가보기로 했다. 카페에 들어서자 그분이 환하게 맞아 주신다. 카페에는 우리 외에 손님이 한 팀만 있어 매우 한적했다.아내는 아메리카노를 나는 생강차를 주문했다. 차를 기다리는 동안에 홀에 있던 손님들이 나가서 대화 하기가 편했다. 남편도 몇 년 전에 암수술을 받았고 현재도 치료중인데 본인까지 암 진단을 받았으니 낙심이 크고 걱정도 많을 것이라 염려 하였는데 의외로 담담 하였다. 오히려 우리 가정을 더 걱정하며 위로를 한다. 위로를 하러 갔는데 위로를 받은 셈이 되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뭐라 표현할 수는 없지만 넉넉하고 뿌듯하였고 오늘 하루가 날씨 만큼이나 포근하고 평화로웠다. 이런 편안한 날이 계속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봄날, 오늘이 좋다.
동재 김정규 논설위원 2026년 04월 30일 10시 13분 Copyright (c) 1999 사천신문 Co.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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