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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화칼럼
꺼져버린 동 지역 경제 불씨, 공약 사업 향촌동 산단 조성으로 되살려야!
사천시의 지형은 통합 이후 오랜 세월동안 미묘한 지역적 균형과 갈등 속에 숨결을 이어왔다. 특히 동 지역(구 삼천포)주민들에게 시정(市政)의 향방은 단순한 행정 서비스의 만족도를 ...... 봉화칼럼 전체 리스트 보기
 
 
『 일제강점기 삼천포 팔포 에히메촌(愛媛村)의 형성 과정과 경제·사회적 구조 분석(1) 』

삼천포 모래땅에 고등어가 뛰놀고, 기선이 물길을 갈랐다. 에히메촌은 일제의 손으로 세워졌으나, 어민의 땀으로 자랐다. 그러나 자본의 파도가 밀려오자, 그들은 그물을 팔고 기억만 남겼다. 삼천포 팔포의 바다는 이제 육지가 되었지만, 그 아래에는 여전히 고등어의 꿈이 숨 쉬고 있다.
Ⅰ. 서론 및 연구 배경
바다는 늘 조용히 경계를 지운다. 그러나 그 잔잔한 수면 아래에는, 한 시대의 의도와 욕망이 깊게 가라앉아 있다. 일제강점기 한반도 연안에 형성된 일본인 이주어촌은, 단순한 이주의 풍경이 아니었다. 그것은 어장을 향한 발걸음이자, 제국의 자본과 권력이 함께 밀려온 파도의 흔적이었다.
1897년 원해어업장려보조법과 1905년 원해어업장려보조규칙은 바다를 향한 길을 열어주었다. 일본 정부와 에히메현 등의 지방 권력은 보조금이라는 이름의 돛을 달아, 수많은 어민을 남해로 이끌었다. 그들은 바다를 따라 이동했지만, 실은 제국의 경계선을 넓히고 있었다.
삼천포 팔포, 옛 팔장포의 물결 위에 자리 잡은 에히메촌. 그곳은 이주어촌 정책이 가장 선명하게 뿌리내린 장소였다. 낯선 기와와 긴 처마의 장옥들이 바다를 향해 줄지어 서 있었고, 그 배후에는 치밀하게 설계된 어업 경영과 공간 질서가 놓여 있었다.
야마모토 모모키치(山本桃吉)라는 한 인물의 손끝에서, 어촌은 하나의 기업처럼 조직되었다. 고등어 건착망 어업은 단순한 생업이 아니라, 자본과 노동, 기술이 결합된 체계로 작동하였다. 바다는 더 이상 삶의 터전만이 아니라, 계산되고 분배되는 생산의 공간이 되었다.
지적도 위에 그려진 선들은 단순한 경계가 아니었다. 그것은 재편된 공간의 질서이자, 서로 다른 삶이 맞닿으며 생겨난 긴장의 흔적이었다. 같은 바다를 바라보면서도, 다른 이름과 다른 권리를 가진 이들이 공존해야 했던 시간.
2024년 겨울, 사천시 도시재생의 이름 아래 팔포의 일제 건축물인 장옥 터가 철거되며, 눈에 보이던 흔적은 사라졌다. 그러나 사라진 것은 건물일 뿐, 그곳에 남겨진 기억과 구조, 그리고 관계의 결은 여전히 땅과 바다 사이에 남아 있다.
이 글은 그 흔적을 따라가려 한다. 에히메촌의 입지 선택에서부터 경영의 방식, 어업의 구조, 그리고 공간의 재편과 갈등에 이르기까지, 바다 위에 세워졌던 한 시대의 질서를, 다시 천천히 읽어내고자 한다.

김진식 논설위원 사천향토사 연구가

2026년 08월 06일 9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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