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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화칼럼
꺼져버린 동 지역 경제 불씨, 공약 사업 향촌동 산단 조성으로 되살려야!
사천시의 지형은 통합 이후 오랜 세월동안 미묘한 지역적 균형과 갈등 속에 숨결을 이어왔다. 특히 동 지역(구 삼천포)주민들에게 시정(市政)의 향방은 단순한 행정 서비스의 만족도를 ...... 봉화칼럼 전체 리스트 보기
 
 
『 일제강점기 삼천포 팔포(팔장포) 입지 선정 및 에히메촌의 형성 과정(2) 』

1.이주 계기와 입지 선정
에히메촌 어민들의 출신지는 일본국 에히메현 미나미우와군 니시가이쵸 우치도마리(現 아이난쵸 우치도마리)이다.
《서해町誌》에 따르면 내박(內泊, 우치도마리) 출신 어민 원전인지랑(原田寅之郞) 등이 진해만 출어 중 고등어 어군의 회유를 목격하고 귀국 후 보고한 것이 이주의 첫 계기가 되었다.
지도자 야마모토 모모키치(1861년생)는 우치도마리에서 농지와 임야, 운송선 수 척을 소유한 지역 자본가이자 러일전쟁 당시 구장을 지낸 인물이었다.
거제도 출어 실패 후 1911년 5월 삼천포 일대를 직접 시찰하는 과정에서 팔포 모래밭으로 고등어 떼가 튀어 오르는 광경을 목격하고, 삼천포면 동금리 팔장포(現 사천시 팔포3길 85~105 일대) 통창 기슭을 이주지로 최종 확정하였다.
일본 에히메현은 건물 1호당 6~7할, 토지 3할을 보조금으로 지원하였다. 1911년 5월 1차 이주(93명)를 시작으로 1912년(24가구), 1918년, 1922년 등을 거쳐 세대를 확장하며 동금리 256번지 일대에 정착 공동체를 완성하였다.
이 지역은 신수도와 늑도 등 천연 방파제를 갖춘 포구이자 대도시 진주와의 배후 연계성이 뛰어난 입지적 조건을 지니고 있었다.
2.공식 명칭 및 단체 구성
조선총독부 관보 및 공식 문서상 명칭은 애원원해출어단체(愛媛遠海出漁) 또는 애원어업단체로 표기되었으며, 학계에서는 애원현원양어업이주어업단 등으로 명명했다.
당시 주민들은 이들이 거주하던 장옥 집단을 단따이집(단체집), 통창 언덕(통창공원)을 단따이산(단체산, 團體山)이라 불렀다.
Ⅲ. 경제 구조: 고등어 건착망(巾着網) 어업과 반농반어(半農半漁) 경영
1. 건착망 어업의 기업적 운영과 기술적 특징
에히메촌은 한국 연안 어장을 현대식 건착망 어업 기지로 변모시킨 선구적 역할을 담당했다. 건착망 1통(統) 조업을 위해 망선(網船) 2척(척당 10명), 소선(小船) 3척(노잡이 4명, 지휘자 1명) 등 총 5척의 선박과 35명의 어민이 한 조로 편성되었다.
설과 추석을 제외하고 연중 조업하였으며, 2월과 7월은 경상남북도 연안, 9월과 이듬해 1월은 전남 거문도 등 남해 전역 및 동해안(포항, 감포, 방어진)까지 광범위하게 진출하였다.
어획된 고등어와 전갱이는 현장에서 직접 운반선 상인에게 생선 상태로 매각되어 자금 회수가 빠르고 일본 본국으로 값싼 식량을 공급하는 국가적 수탈 목적에 부합하였다.

김진식 논설위원 사천향토사 연구가

2026년 08월 13일 1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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