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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의 꿈과 함께 새롭게 문을 여는 삼천포대방초등학교 』

말문리의 치욕에서 문선리의 영광으로, 삼천포 교육의 뿌리①
사천의 잔잔한 바다 바람이 스치는 그곳, 2027년 봄 삼천포초등학교와 대방초등학교가 하나의 이름으로 다시 태어난다.
저출산의 파도 속에서 두 학교는 2025년 12월 학부모 설문(삼천포초 83%, 대방초 88% 찬성)의 마음을 안고 삼천포대방초등학교라는 새로운 꿈의 문을 연다.
삼천포의 교육사는 말문(末文)이라는 지명에서 시작된다. 고려 현종 2년(1011) 이래 이 땅은 학문과 거 먼 ‘끝말 문(末文)'으로 불렸다.
세종실록 지리지는 “와룡산은 현 남쪽에 있다. 사람들은 순박하고 근면하여 밭 갈고 고기 잡으며 살았으나, 학문과는 담을 쌓고 지냈다"고 기록한다.
전환점은 조선 영조 때 찾아왔다. 진주에서 이주한 한 선비 가문이 동동 근처에 터를 잡고 사재를 털어 서당을 세웠고, 이름난 문사들을 초빙해 학문의 씨앗을 심었다.
그 결실로 팔문장(八文章)이라 불린 뛰어난 문인들이 배출되었고, 말문리의 치욕은 문선리(文善里)의 영광으로 바뀌었다.
근대 교육의 서막은 1905년 4월 3일 장응상(張鷹相)이 호연재(浩然齋)를 개조해 세운 광명의숙(光明義塾)에서 올랐다.
이는 삼천포에 처음 밝힌 신학문의 등불이었고, 이후 보흥의숙을 거쳐 1950년대 삼천포국민학교로 이어지며 121년 교육의 맥을 잇게 된다.
대방초등학교의 역사는 1970년 3월 1일 삼천포국민학교 대방분교로 시작되어, 1971년 8월 24일 인가를 받고 1972년 12월 5일 본관을 완공하며 독립된 터전을 마련했다.
반세기의 세월 동안 대방의 아이들은 이 교정에서 꿈을 키웠고, 이제 그 역사는 삼천포대방초등학교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계승된다.

김진식 논설위원 사천향토사 연구가

2026년 10월 01일 10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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