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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연재 유공선사 추모제 봉행 』

  호연재 유공선사 추모제례가 지난 13일 오후3시 노산 호연재 학당 광장에서 엄숙하게 봉행되었다.
호연재 선사 추모제는 지난해 처음으로 봉행된 뒤 두번째다. 사천시가 주최하고 호연재보존회가 주관한 추모제는 초헌관에 정만규 사천시장, 아헌관에 최갑현 시의회 의장, 종헌관에 천용욱 호연재 보존 회장이 맡아 봉행되었고, 차상돈 사천경찰서장, 장병석 사천문화원장 등 관내 기관 단체장과 도·시의원, 시민 등 100여명이 동참하였다.
추모제에 앞서 천용욱 보존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250여년전(조선 영조 46년)에 호연재(서재)를 창설하고 이고장에 학문의 싹을 틔운 유공선사의 뜻을 기려 이땅에 호연지기 정신이 면면히 이어지기를 기원하였다.
정만규 사천시장과 최갑현 시의회 의장도 인사말을 통해 “일제강점기에 강제철폐되었던 호연재를 복원하여 충·효·예의 인성교육장으로 거듭나 문운의 역사와 전통을 숭상하는 학문의 장이 넓게 펼쳐지기를 기대한다”고 말하였다.
사천시사에 수록된 “호연재지”에 따르면 노산 호연재는 1770년(조선 영조 46년)의 개성의 실학자(강환주, 손억년) 두분이 우리고장(삼천포)에 이주하여 노산에 서재(학당)인 호연재를 창설하고 이고장 민초들에게 학문의 길을 열었고 이를 계기로 곳곳에 19군데의 크고 작은 서당이 문을 열게 함으로써 문운에 눈을 뜨게 되고 영남 팔문장을 배출하였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인 1900년초부터 호연재는 민족혼을 일깨운다는 소굴로 지목되면서 강제철폐 되었고 일제하 삼천포 공립보통학교로서 현재의 삼천포초등학교의 발판이 되었다.
그후 100여년 동안 잊혀졌던 호연재는 이 고장 원로들의 발원으로 2008년 10월 옛 호연재 자리인 노산에 복원되었고 충·효·예의 교육장으로 거듭나 지금까지 600여명의 초중등 학동들에게 인성교육을 펼치고 있다.
앞으로 호연재는 충·효·예를 바탕으로 신혼부부와 다문화가족, 여러가지 사정으로 혼례를 치르지 못한 노부부들을 대상으로 전통혼례를 올려드리기 위해 이미 민속촌을 탐방하였고 호연재 학동들이 펼쳤던 3.1독립만세운동 재연, 서도문인화, 전통무용 전수 등 명실공히 우리고장 전통문화의 맥을 호연지기 정신으로 이어갈 계획으로 알려졌다.
한편 올해 호연재 선사추모제에는 전통무용가 한순자(호연재 보존회원)씨와 무용수들이 지난해 “살풀이”에 이어 올해는 제단 앞에서 진주 검무를 獻舞로 펼쳐보여 감동을 주었다.

취재 : 이동호 편집이사
4000news@naver.com

2013년 10월 17일 12시 22분 /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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