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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천 기독교의 효시 삼천포교회, 1908년 거열휴 전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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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처음으로 기독교 복음이 전파된 것은 독일인 귀츨라프(Carl A. Gutzlaff. 1803~1851) 목사를 통해 들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는 태국과 중국에서 선교를 하다가 1832년 영국 동인도회사 소속의 로드 암허스트(the Lord Amherst)호 통역자로 와서 전라도 지방 해안을 따라 한 달여 동안 복음을 전파하고 떠난 것으로 전해진다.(삼천포교회 110년사 참조)
또 우리나라에 세워진 첫 교회는 황해도 장연군의 솔내교회(松川敎會)로 1883년 처음 건립 됐다.
한국에 기독교가 들어 온지 130여년이 되었으며 사천지역에는 현 삼천포교회와 곤양교회가 올해로 112년을 맞이하였고 사천 중항교회가 101주년을 맞이하는 등 100년의 역사를 가진 교회는 3곳 이다.
사천신문은 한국기독교 역사 탐방 중에서도 사천지역에서 선교의 뿌리를 내리고 100여년의 세월을 견디어 온 교회들을 소개하는 장을 마련했다.
삼천포교회는 1908년에 설립됐으며 1905년 진주지역에서 선교 활동을 하던 의료선교사인 거열휴(巨烈烋, 커를, Dr. Hugh Currell)부부를 통해 복음이 전해졌다.
거열휴 선교사는 진주를 비롯해 서부경남지역인 사천, 남해, 하동, 산청, 의령 등에서 선교활동을 하다 1908년 당시 동금리교회(현 삼천포교회) 설립의 주춧돌을 놓은 장본인이며 호주 빅토리아 장로교에서 파송돼 왔다.
사천 지역에 외국인 선교사를 통해 최초로 설립된 삼천포교회는 처음에는 동금리 480번지 새골목(팔포) 통창 가까이 설립되어 동금리교회로 불리다가 1920년 교회를 선구동 140번지로 옮기면서 삼천포교회로 명칭을 바꿨다.
삼천포교회는 사천지역에서 거열휴선교사에 의해 설립된 첫 교회로 1910년 한국강제병합과 1945년 8.15 광복을 거치는 동안 수많은 핍박과 시련 속에서 보수 개혁주의 신앙 전통을 이어 오고 있으며 삼천포지역의 중심축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고신교단 소속인 삼천포교회 설립자이며 초대 교역자인 거열휴 의료선교사(1871~1943)는 1902년 호주의 빅토리아 장로교회의 파송을 받아 부산에 도착하였다가 1905년 진주에 와서 진주교회(당시 진주읍교회)를 설립하고, 1908년에 삼천포지역에 기독교 복음을 처음 전파한 인물이다.
삼천포교회는 1908년4월5일 설립되었으며 첫 교인은 남자 정봉기, 유재도, 여중기, 김인구씨 등 4명과 여자는 천밤이씨와 딸인 조원순, 조원순씨의 딸 유경점(집사), 전금이, 정정님, 김성악 모녀와 김영업 모녀 등으로 거열휴 선교사와 권서들의 전도를 받고 교회에 출석했다.
교회 설립초기에 큰 시련이 있어 신도중에서 낙심자가 많아 30여명이 공모하여 예배당을 팔려는 위기의 순간이 있었으나 독실한 신자 정봉기(당시 교회 영수:領袖)씨가 능욕과 핍박을 받으며 지켜냈다고 제21회 경남노회록(1926.7.6.)에 기록하고 있다.
선구동에서 자리를 잡은 삼천포교회는 교인이 늘고 장소가 협소해지자 1981년 9월에 지금의 동금동 72-1번지에 교회당을 신축하여 연면적 1356㎡, 지하 1층, 지상 2층으로 완공했다.
2006년 8월에는 비전센터(교육관) 건축위원회를 조직하고 2011년 비전센터 기공예배를 올리는 순간을 맞이했다.
현재 공은성 목사는 제25대 교역자로서 2006년 4월에 부임해 현재까지 삼천포교회 담임 목사를 맡고 있다.
공은성 목사는 “삼천포교회는 처음에는 미약했지만, 112년이라는 역사를 통해 지역사회와 전 세계를 섬기는 거목이 되었으며 모든 사역마다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음으로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이 가득한 교회로서 성장하게 하신 은혜에 하나님께 진실로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공은성 목사는 또 오늘도 삼천포교회는 시대적인 사명 앞에 부끄럽지 않는 교회로 든든히 서 가기 원하며 우리 앞에 놓인 위기를 놓고 누구보다 앞장서서 기도하고, 희생과 섬김과 봉사로 지역사회를 더욱 아름답게 세우는 교회가 될 것을 다짐하고 사천시민들의 많은 관심과 격려를 부탁드린다고 덧붙였다.
정천권 기자 ckjung8226@naver.com 2020년 06월 11일 11시 32분 / 종합 Copyright (c) 1999 사천신문 Co.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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