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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천의 역사와 유적지를 찾아서(43) 삼천포 밤(夜) 중학교(角山學院)를 아시나요? 』

  사천시사에 따르면 각산학원(角山學院)는 각산공민학교(角山公民學校)와 삼천포고등공민학교(三千浦高等公民學校)를 말한다.
각산학원은 해방 된지 얼마 안 되어 6.25전란으로 가난하게 살아야만 했던 때. 초등학교 6년 과정을 3년에 이수시켜 졸업시키는 야간 학교였다. 호구지책에 급급했던 그때 일부 부모들은 자녀들의 국민학교(현. 초등학교) 취학을 아예 생각지도 못한 가정이 더러 있었다.
이 당시 이들은 거의가 폄하가 아닌 변두리 또는 인근 시골 자녀들로 도심지의 잘 사는 집 식모로, 저자거리 장사꾼으로, 구두닦이로 일하거나 거리를 떠돌아다니고 있었다.
1954년 8월, 동리2구(동동), 서리2구(서동)사무소에서 구 유치원 자리를 빌려 지금은 대부분 운명을 달리하신 박원택(朴元澤)초대교장, 양한태(梁漢泰), 정봉연(丁奉連), 한을석(韓乙石), 이병호(李炳鎬), 이규범(李圭範), 전정도(全正道), 이동호(李潼鎬)2대·폐교시 까지 교장 등 그 당시 젊은 20대 청년들이 이들에게 글을 가르치겠다는 신념으로 발 벗고 나섰다.
책은 교과서를 프린터 해 주었고, 전기가 없는 날은 호롱불을 밝히고 공부를 했다. 밀물처럼 밀려드는 배움에 굶주린 학생들을 감당할 수 없어 1955년 여름, 삼천포국민학교 윤주선 교장선생의 배려로 강당과 교실 3개와 다른 교실 3개를 빌려 안정된 수업을 시작했는데, 학생들은 300여명이 되었고 비로소 선생들 끼리 의논해 만든 이름이 각산공민학교다.
그 뒤 문선초등학교 강당, 삼천포문화원, 소방서를 전전하면서 서러운 공부를 시킨 것이 약20년 간 21회의 1,900여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삼천포문화원으로 옮기면서 책걸상이 없어 각 학교의 도움으로 헌 책걸상을 수리하여 썼고 칠판은 고향 출신 박영수(당시 치안국장)가 도움을 주기도 했으며, 학생 중에는 선생보다 나이가 많은 처녀들도 있었다.
삼천포고등공민학교는 1952년 5월 배우고자 열망은 있으나 어려운 사정으로 진학의 기회를 얻지 못한 한 맺힌 청소년들에게 야간을 이용하여 중학과정을 공부할 수 있는 교육의 장이 마련이 되었는데, 전 일본소학교였던 구. 문선국민학교의 교사를 빌려 삼천포고등공민학교라 일컫고 1953년 6월에 설립 인가(9학급)를 받아 개교하였다.
1971년 9월에 사천시 동서동 63번지에 신축교사(철근콘트리트 6개 교실)를 완공하였으나 이 후 생활수준 향상으로 입학희망자가 격감하자 1983년 2월 22일 제29회 졸업식 및 폐교식이 거행 되었으며, 졸업생은 1,253명(남 496명, 여 757명)이 배출되었다.
우리나라 교육이 제자리를 잡은 것은 6.25사변을 겪고 난 뒤의 일로써 정부의 안정과도 깊은 연관이 있었다. 이 당시 삼천포에는 삼천포고등학교를 비롯하여 남양중학교, 삼천포제일중학교, 삼천포제일고등학교(현, 마이스터 삼천포공업고등학교) 등 4개소의 중·고등학교가 신설되어 기존 남녀 중학교와 더불어 중·고등과정의 교육을 담당하였다.

문화부장 김진식
kimarami2005@naver.com

2021년 04월 01일 10시 06분 /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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