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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천의 역사와 유적지를 찾아서(46) 우보 박남조 선생의 시비(詩碑)조형물이 세워진다 』

  신수도는 일제 강점기 때부터 시범적으로 자력으로 향토 개발에 나섰다. 그 당시 지도자였던 김명출(金明出)씨의 적극적인 지도하에 협동정신을 발휘하여 농업협동조합을 결성하여 그 이득금으로 신수초등학교 교사진의 회비를 대납하여 학부형의 부담을 경감 하였고,
1960년대에는 초등학교조차 못 보내는 도서민을 위해 박충대(당시 28세)씨는 신수도에 있는 교회에서 흑판을 걸어놓고 17세 부터 30세 까지의 도민을 모아 하루 세 시간씩 한글을 가르치고 있다는 기사를 접할 때 이미 이곳에는 자생의 활력을 얻어 생활의 안정을 보게 되었다.
일제 강점기 사천 지역에는 한 사람의 문학청년이 있어 꾸준히 신문학의 맥(脈)을 잇고 있었으니 그가 다름 아닌 우보(牛步) 박남조(朴南祚)였다. 그는 경남사범학교 3년 때 한 필화사건으로 인해 퇴학당한 후 신수도(新樹島)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있으면서 단편소설과 시(詩)를 써서 동아일보, 조선일보 등 중앙일간지에 투고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1929년 동아일보에 「젊은 개척자(開拓者)」라는 제목의 단편소설을 응모하여 3등으로 당선되었고, 1929년 동아일보사 동아문단(東亞文壇)에 「내마음」, 1930년 조선일보에 발표한 시(詩)에는 「님 생각」이라는 작품이 있었다.
그는 그 후로도 꾸준히 작품을 써 왔으며 일생동안 써 모은 작품을 묶어 1979년 1월에 7순(七旬)의 나이로 처녀 시집(處女詩集) 「바닷가에 살면서」를 펴내었다.
이 밖에도 오랫동안 사천 지역의 도서지방을 돌면서 직접 채록한 민요를 모아서 「박남조 민요집 "내 고향 민요"」를 발간하였다. 그는 이 고장을 사랑하였고 문학을 사랑하면서 생활하였고 문화재 보호협회 회장직을 맡아 오면서 문화재 애호에도 남다른 관심을 지닌 분이었다.
일제의 암흑기에 혼자서 외로이 지켜온 이 고장의 문학을 조명해 보는 마당에 결코 그의 공적이 적지 않았음을 아울러 밝혀 두는 바이며, 섬 이야기는 1930년 조선일보에 발표된 시(詩)이다.

섬 이야기

신두섬(신수도) 구루섬(늑도) 님 그립고 물 그린 곳
전라도 칠산(七山)바다 수로천리(水路千里) 떠나신 님
진종일 기다린 소식 지난 꿈이 날 속여

봄보리 누르르면 큰 기(旗)달고 오신 다 네
보리누름 까지라면 여든이라 일곱 밤을
보리야 어서 누르라 우리 님 어서 보게

※ 섬 이야기는 신수도에 세워질 시비 조형물의 내용이다.
참고문헌 : 동아일보, 정동면지, 삼천포시지

문화부장 김진식
kimarami2005@naver.com

2021년 04월 22일 9시 14분 /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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