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12일까지 공모되었던 경남신문사(대표 이문행) 주관 신춘문예전에서 지역의 마루문학 회원인 김경숙씨(38)와 주부 안미숙씨(26)가 각각 시와 시조부문에 당선되어 영예를 차지하게 되었다.

해를 거듭할수록 작품의 수와 질에서 그 자리를 굳혀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경남신문사의 99년 신춘문예전에서도 관심있는 신인들의 작품들이 쏟아졌다고 하는데, 특히 이번 시와 시조부문에서 당선된 작품들도 쟁쟁한 경쟁자들과 막판까지 경합을 벌이는 중에 당선작으로 수상의 영예를 안게 돼 그 의미가 새롭다 할 것이다.

마루문학회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98년 개천예술제 문학부문에서 신인상을 수상하기도 한 김경숙씨는 지난해 12월에 해산의 기쁨과 함께 얻게된 수상의 소식에 새로운 탄생과 같은 기쁨으로 언제 어디서든 바람의 끝자락을 잡고 시의 바다에서 입덧에 몸살하고 싶다고 당선소감을 피력했으며, 97년 전국 시조 백일장에서 차상을 97최치원선생 추모백일장에서 장원을 수상한 안미숙씨는 삶이 힘들 때 위안처럼 써온 글에 대한 예찬과 함께 나른해진 일상에서 다시 “시작"이라는 파이팅을 외치는 오늘을 고마운분들과 함께 한다는 당선소감을 밝혔다.

곡진한 슬픔을 차분하게 표현한 김경숙씨의 시 <아버지의 수첩> 형식조율, 대상 그려내는 능력에서 단연이 돋보였다는 안미숙씨의 시조<익명의 새>는 새해 벽두에 지역문단에 새로운 활력소로써 앞으로의 활동들에도 큰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아버지의 수첩

수첩에 다 적지 못한 아버지의 생애가
손때 묻은 수첩의 빈공간에서
귀향을 꿈꾸는 바람소리로 울고 있다
꽃버짐 지천으로 널린 문자들의 골목에서
어머니 애간장 타는 세월이 한숨으로 묻어 난다
번지 없이 떠도는 아버지의 고단한 꿈도
선산 모서리 터잡고 앉은 구절초 시린 목덜미에
하얗게 드러 누웠다
손때 묻은 수첩 빈칸에는
섬들의 잔가지 거느린
실안 앞바다 쑥냄새 밴 목선들이
닻을 내리는 서러운 계절의 안부를 묻고 있다
녹슨 대문 흔드는 별들이
휘파람새 짧은 울음 자물리는 산비알에 닿아
섬나리꽃 피우는 밤바다로 썰물 진다
숨어 울던 파도 소리
떼고함으로 몰려오는 자정 너머
아버지 소식을 묻는 익명의 바람이
할머니 부음 더듬고 간다
아버지 수첩 빈 칸, 물기 번진 주소 한켠이
초혼을 외치는 어둠 끝자락에서 빛난다



익명의 새

가지 끝에 앉아 있는 익명의 새를 보았다
천만년 전에도, 몇 억만년 전에도
피 쏟듯 온 정열 모아 저와 같이 울었을까
무엇을 바꾸려고 밤을 새워 울고 있을까
그도 알고 있을테지.
역부족의 저항이란 걸 여전히 변하는 것은
날이 새고 지는 것 뿐
늘 같은 목소리로 자명종이 울려댄다
더께 쌓인 세월에 익숙해진 가슴 펴고
지금은 회색빛 거리로 걸어가야 할 시간 속으로
속으로만 지쳐 가는 일상들이
무력한 실눈 뜨고 낡은 옷을 더듬는 동안
익명의 그 새 한마리 내 안에서 울고 있다

1999.01.11~0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