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풍물패 ‘반곱슬’의 유럽여행기 』
 |
13. 마지막 공연
로마는 너무 갑갑한 도시다. 숨이 턱까지 차오를 정도로 무더운 날씨에, 어딜 가나 정복을 입은 경찰들이 도시 전체를 감시하고 있는 듯 하다. 지난 번 동진이와 장구연습을 위해 공원에서 장구를 치다가 얼마 지나지도 않아서 바로 로마경찰에게 제지당하고 말았다. 아무래도 깔끔하지 않은 옷차림에 악기까지 들고 있어서 우리를 관광객이 아닌 집시로 알았나 보다. 분명 이렇게 많은 경찰들은 로마사람들을 먹여 살리는 관광객들의 치안보호를 위해 존재하겠지만, 유색인종이라는 이방인들은 이들에게는 귀찮은 존재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물론 아프리카나 중동, 중국에서 셀 수 없이 밀려들어오는 외국인들로 로마는 몸살을 앓고 있지만, 옛 조상들의 유산에 기대어 관광과 소비에만 몰두해 있는 로마의 사회적 분위기로 말미암아 자초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속에서도 우리는 공연을 하기 위해 몸부림 쳤다. 하지만 경찰차까지 대기해 놓고 관광지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경찰 앞에서 내놓고 공연하기란 웬만한 배짱으로는 힘든 일이었다. 더군다나 체코에서 한번 경찰에게 공연을 제지당한 적이 있어 화롯불에 손 데인 아이마냥 겁부터 났던 것이다. 특히, 로마 젊은이들과 관광객이 가장 많이 몰리는 스페인 계단 앞이 공연하기에 가장 좋은 곳이었는데, 이곳은 사람들이 많이 붐벼서 그런지 경찰이 더 많았다. 며칠 전 로마에서 처음으로 공연하기로 한 날에는 스페인광장에 있는 경찰에게 미리 공연허락을 받아보려고 했지만 거절당하고 말았다. 괜히 물어봤다는 후회를 하면서, 결국은 조금 떨어져 있는 뽀뽈로 광장에서 공연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물론 그곳에도 경찰차가 대기 하고 있었지만, 경찰의 눈을 피해서 무사히 공연을 마쳤었다.
하지만 ‘스페인계단’이라는 최적의 공연장소를 놓아두고 사람이 많지 않은 곳에서 공연을 했다는 생각 때문에 다들 마음에 차지 않는 듯 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유럽에서의 마지막 공연은 ‘스페인 계단’앞에서 마무리하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마음을 먹고 악기를 멘 채 길을 나섰지만, 경찰에게 제지당하고 공연을 실패할 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눈앞이 캄캄하기만 하다. 민박집 아주머니는 작년에 왔던 풍물패들도 그곳에서 공연하다가 쫓겨났다고 내심 걱정스런 눈빛이다.
그런데 문득 우리도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쫓겨날지도 모른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니고, 공연을 한다고 해서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닌데, 이런 위험을 무릅쓰고 기어코 공연을 하려고 하는 우리의 모습은 젊음으로 설명될 수밖에 없다.
‘그래, 젊음은 도전이다. 단지 내 앞을 가로막는 것이 있기 때문에 끝없이 도전할 뿐이다.’ 이렇게 마음을 다지고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한번 부딪혀보고 판단하기로 했다.
지하철역에 내려 우리는 나름대로 공연을 하기 위한 작전을 짰다. 우리가 도착한 스페인계단 앞은 여전히 경찰차가 순찰 중이었는데, 일단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옷을 갈아입고 기회를 노리기로 했다. 마침내 순찰차가 다른 곳으로 이동해 갔다. 우리는 기다렸다는 듯이, 거리 앞으로 뛰쳐나가 사물을 마음껏 두드려댔다. 중간 중간 경찰이 오지 않나, 곁눈질을 하면서 공연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공연은 기대 이상이었다. 공연이 끝나자 주위에서 소리를 듣고 몰려온 한국관광객 저마다 인사를 한다. 그리고 한 달 동안 유럽지역을 돌아다니면서 풍물공연을 한 것이 한국배낭여행객들 사이에 소문이 퍼져 로마에 있는 여러 민박집에 묵고 있던 사람들도 우리의 공연을 보러 왔단다. 거기에다가 민박집에서 음식을 해주시는 연변아주머니도 뒤늦게 도착했다. 그리고 우리 공연을 제대로 못 본 사람들이 이내 앵콜공연이라도 해달라고 아우성이다. 이런 분위기에 우리는 공연을 한 번 더 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경찰에 대한 두려움도 없다.
주위에 사람들의 반응이 너무 좋다보니, 경찰들도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가로등 불빛이 하나씩 켜지고, 멋진 야경을 자랑하는 스페인계단에도 어둠이 한 계단씩 찾아오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한번씩 쳐다보며, 새롭게 악을 울렸다. 소리는 어둠 속에서 더 크게 퍼져나갔다. 조금 전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이태리 젊은이들이 무슨 깃발인지를 들고 환호하며 뛰어다니기도 한다. 우리는 앵콜 공연인 만큼 지금까지와는 다른 공연을 보여주기 위해 정해놓은 공연틀을 벗어나, 상쇠의 리듬에 몸을 맡기고 마음껏 두드렸다. 언제 다시 설 수 있을지 모르는 유럽이라는 무대에서의 마지막공연을 후회하지 않기 위하여.
마지막 공연을 마치고 그동안 짜증나는 날씨와 여행 막바지에 접어들어 지쳐가는 탓에 서로 부딪히기도 했던 우리는 다시 하나로 뭉칠 수 있었다. 풍물이라는 게 참 묘하다. 서로 등지고 튕겨나가 버릴 것만 같다가도 함께 풍물을 치고 나면 이렇게 한마음이 된다. 마지막 공연의 감흥이 아직 가슴속에 벅찬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서로 이번 공연에 대한 저마다의 말들이 끊이질 않는다.
이제 마지막 공연도 끝내고, 여행은 막바지로 접어든다. 그 동안 있었던 수많은 일들, 좋은 만남들, 이제 진행형이 아니라, ‘추억’이라는 과거명사로 밖에 남지 않을 것이라는 게 씁쓸하게 다가온다. 아마 그 추억을 다시 살리기 위해서 여행을 다시 떠나야하지 않을까 싶다. 앞으로 남은 유럽여행의 2일. 아쉬움이 크지만 후회하지 않게 잘 마무리 해야겠다.
2003년 08월 07일 11시 41분 / 문화 Copyright (c) 1999 사천신문 Co. All rights reserved.
  
|
|
봉화칼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