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뚝에서 하얀연기가 피어오르면 농촌의 아침이 시작됩니다. 요즘은 시골의 농가도 개량을 많이 해 장작을 패가며 불을 때우는 집은 그다지 흔하지가 않습니다. 세상이 시끄러운 오늘도, 새벽은 정적을 뚫고 꼬끼오, 멍멍, 음매하는 울음소리로 단잠을 깨웁니다.

부시럭거리는 소리에 무슨 소린가 하여 귀 기울여 들어보면 어머님께서는 혹시 자식들이 일찍 잠이 깰까 조심조심 가지를 꺾어가시며 불을 짚입니다. 거기에 며느리도 잠이 깨어 앞마당을 쓸고 나면 어느 덧 햇살이 뽀얀 안개를 뚫고 나와 앞마당을 비춥니다. 그토록 입맛이 떫던 아침은 언제였던가 싶게 콩나물 국에 김치 한가지만 있어도 한 두 그릇은 도깨비 방망이를 두드리듯 뚝딱이지요.

아침이슬이 깨기 전에 어머님과 함께 밭을 메러 갑니다. 어머님과 며느리는 도란도란 이야기를 해가며 처음에는 엇비슷하게 메어 나가다 어느덧 어머님 이야기가 들리지 않더군요. 익숙한 손 놀림으로 저만치 앞서가는 어머님의 등을 보며 쫓아 가기가 바쁩니다.

아침 이슬이 깨고 난 뒤, 한참 바쁠 농번기 때, 벼 타작하는 시기에 맞춰 볏단을 뒤집어 가며 햇볕에 말립니다. 콤바인을 대면 쉽게 해결되지만 콤바인 대는 값이 만만찮죠. 쌀 한톨도 아까워 꼼꼼히 묶은 걸 뒤집을 때마다 남편은 코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더니 이마에서 흘러 내린 땀은 온 몸에 비를 맞은 듯 축축히 젖어 있더군요. 젖은 옷을 보란듯이 훌러덩 벗더니 빨래 짜듯 쭉 짜니 정말 금방 빨래해 건져 올린듯 물인 지 땀인 지 쭉 베어 나오더라구요. 그 모양새를 보시며 웃으시는 시부모님 주름진 이마에도 허연 흙먼지와 지푸라기가 끼여 있었습니다. 칠순에 가까운 연세에 땀도 말랐나 봅니다. 부모님의 주름살이 하나씩 늘 때마다 멀고도 가까운 우리들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맛있게 먹은 점심 뒤 얼마되지 않아 새참을 가져 갑니다. 시원한 막걸리와 부침개, 금방 나무에서 딴 단감. 단감을 한입 한입 베어 먹을 때마다 혀끝에 감도는 달짝지근하고 싱싱한 그 맛은 아마 먹어 보지 못하면 모르지 싶습니다. 볏단을 모아 타작을 할 때에는 아이들도 지칠 줄 모르고 한 몫을 하더군요. 거기에다 칭찬을 더하면 신이나 “정말 잘해?”하며 온 몸에 볏짚가루가 묻어 가렵고 쑤실텐데도 모르고 하는 모습이 대견하기까지 했습니다.

뉘웃뉘웃 서산에 해가 매달릴 때. 농촌의 하루도 저물어 갑니다. 행여나 타작할 시기에 비가 오지 않을까 하는 노심초사하는 마음으로 부모님은 일기예보를 시청하시고 나서야 단잠에 빠져드십니다. 현금을 손에 쥐기가 쉽지않은 요즘 농촌현실.

다행히 소값이 올라 조금 나아진 형편이지만 땅만보고 사시는 부모님과 농부님들은 부족한 일손과 정부가 여러가지 방안만 제시해 놓고 결정을 하지않음에 더욱 애가 탄답니다. 모든 농사를 기계로 하여 좀더 쉽게 농사를 짓는 것이 농민들의 바램이기도 한데요 문제는 기계값입니다. 한 두푼하는 금액도 아니고 몇 천만원씩 하는 기계값을 감당하느니 차라리 온몸이 부서져 가루가 되어도 몸으로 때우는 게 나으니 열심히 땀흘려 농사를 짓는 것입니다. 피곤한 하루였지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었다는게 오히려 감사한 하루였습니다.

-주부리포터 장자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