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천신문 ▒▒▒

봉화칼럼

특사경 도입으로 국민 건강권을 지켜야
지난 코로나-19 펜데믹은 전 세계가 사회안전망의 가치를 재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위기에 제대로 작동하는 국가적 안전망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팬데믹의 대처와 극복 수준이 매우 ......

『 문화와 역사 -사천 매향비 』

사천시 곤양면 흥사리에 가면 매향비가 있다. 고려 우왕 13년(1387년)에 세웠다고 한다. 매향(埋香)이란 향나무를 묻는 것이고 매향비는 매향을 한 다음 세우는 비석이다.
향나무를 갯벌에 오래 담가두면 강철 같이 단단해서 두드리면 쇳소리가 나는 침향(沈香)이 되는데 향나무가 침향이 되면 갯벌에서 저절로 물 위로 떠오른다고 한다.
침향은 태워도 그을음이 나지 않는 가장 질 좋은 향이다. 또 사리함이나 불상을 만드는 데 쓸 만큼 소중하고 좋은 재료로 대접을 받았으며 약재로 쓰이기까지 했다고 한다.
매향이 이처럼 단순히 더 좋은 향이나 목재를 얻기 위한 것이기만 했다면 후세의 눈길을 크게 끌지는 못한다. 하지만 고려말과 조선초에 주로 이뤄진 매향의 뒤안길에는 미륵신앙에 기대어 당대 사회가 주는 고통과 불안을 없애 보려는 민중의 비원(悲願)이 서려 있다.
미륵은 석가모니 입멸 후 56억 7000만년만에 나타나 용화수(龍華樹)에서 성불하고 세 차례에 걸친 설법으로 282억명을 제도한다는 희망의 부처. 지금은 도솔천에 머물지만, 사람들이 옷과 음식을 보시하거나 지혜와 계행(戒行)을 닦거나 향과 꽃을 공양하거나 하면 하생(下生)해 용화세상을 이룬다는 것이다.
당시 개경 귀족들의 사치향락은 끝이 없었다. 지방에 대한 통제도 느슨해지는 바람에 백성에 대한 호족의 가렴주구는 견줄 데 없었다. 왜구는 또 왜 그리 설치는지, 이틀이 멀다고 쳐들어와 사람을 죽이고 재산을 빼앗았다. 고려사 등에는 매향비를 세우기 전인 1379년과 1380년 왜구가 사천에 쳐들어와 쑥대밭으로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다.
15줄 204자로 이뤄진 매향비에는 당대를 살았던 지역 민중의 간절함이 담겨 있다. 울퉁불퉁한 자연석에 새긴 글의 첫머리는 “많은 사람이 계를 모아 미륵불 오시기를 서원하며 향을 묻는다”(千人結契埋香願王文)고 돼 있으며, 끝에는 “모두 4100”(計四千一百)이라고 숫자까지 적혀 있다.
<세종실록> 지리지에 따르면 1442년 사천에는 370호 1817명이 살고 있었다. 또 지금의 남해군과 사천시 곤양·곤명면을 아우르는 곤남군의 1419년 호구수는 270호 1300명이었다. 당시 매향 행사에 참가한 사람 숫자가 두 군현을 더한 인구수보다 많았던 것이다.
매향비 앞을 흐르는 묵곡천은 사천만 안의 작은 만 광포만 들머리의 띠섬에 가 부딪힌다. 지금 매향비 둘레는 온통 무논이지만 그 때는 길쭉하게 홈을 파고 들어온 짠물이 민물과 만나는 갯벌이었을 것이다. 4100명이 모여 미륵하생을 서원하는 615년 전 장면을 떠올려 본다. 이들은 왕의 만수무강과 국태민안도 새기고 빌었다. 하지만 이는 다같이 모이는 데 필요한 명분이었을 뿐임이 분명해 보인다. 저항의 기운을 보이는 군중 수천명이 공공연하게 모이도록 내버려둘 벼슬아치나 호족은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불교의 미륵신앙에 기대어 당대의 고통을 없애려고 치른 매향 행사였지만 현실에서는 지배집단에 대한 커다란 위력 시위가 아닐 수 없었다. 호족들은 스님을 중심으로 일반 민중이 모인 매향 규모를 보고는 모르긴 몰라도 모골이 송연했을 것이다.

2002년 06월 17일 12시 23분 / 문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