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토킨스 著


그가 내세운 ‘유전자 결정론'이 지놈 프로젝트를 비롯한 인간의 유전자 정복 의지를 촉발시켰기 때문이다.
인간이 질병을 정복하기 위해 유전자 연구를 시작한 배경에는 여러가지 추론과 상상력이 동원됐다.
도킨스 교수가 유전자 결정론을 설파한 책이 바로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다.
‘유전자 결정론'은 무엇인가.
지난해 국립공원관리공단이 반달곰 복원을 위해 3마리의 어린곰을 지리산에 방사했다. 시간이 지나 2마리는 방사에 성공했지만 1마리는 죽은 채 발견됐다.
원인 조사에 나선 공원측은 죽은 반달곰이 다른 반달곰에 비해 심약한 데다 적응력이 약해 결국 야생환경에 적응하지 못함으로써 죽음을 맞았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적응훈련을 하던 새끼 때부터 원래 그랬다는 것이다.
유전자 결정론은 여기서 빛을 발한다. 야생을 견디지 못하고 죽은 곰에게는 태어날 때부터 심약한 유전자 프로그램이 들어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 곰은 자신이 유전자를 선택하지 않았다. 그렇게 태어났을 뿐이다. 그렇다면 그 곰을 죽이지 않는 방법은 무엇이었을까. 이론상으론 간단하다. 유전자 프로그램을 바꾸면 된다.
‘이기적 유전자'가 출간되기 전까지 사람들은 머리카락, 피부색, 키 등 외모는 유전되지만 사회적 행동은 유전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즉 인간의 사회적 행동은 학습이나 경험에 의해 달라지는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기적 유전자'는 인간의 사회적 행동도 유전자에 의해 좌우된다고 주장했다. 사회생물학 논쟁에 불을 붙인 것이다.
도킨스는 인간의 번식도 유전자를 존속시키기 위해 프로그램된 행동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생명체는 죽지만 유전자는 번식을 통해 계속 지구상에 살아남는다.
가족 사랑도 마찬가지다. 유전자는 자기와 비슷한 유전자들을 되도록 많이 남기기 위해 가족 사랑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즉 유전자는 자신이 어느 몸을 빌려 있던간에 자신의 생존에만 신경을 쓰는 이기적인 존재다.
생명체는 자신의 주인인 유전자를 보존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고까지 말한다.
책의 제목이 ‘이기적인 유전자'가 된 것도 이 같은 도킨스의 도발적인 생각 때문이다.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가 출간되면서 힘을 얻은 유전자 결정론은 인류 미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들의 운명을 쥐고 있는 유전자 프로그램에 도전할 전투욕을 촉발시킨


것이다.
실제로 수많은 국가와 연구기관, 기업이 80~90년대 유전자 연구에 엄청난 시간과 비용을 투자했다. 그 결과 지놈프로젝트가 결실을 맺었고 유전적인 요인에 의한 여러가지 질병의 정복 가능성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었다.
몇몇 기업의 후원을 받은 연구기관들이 상업적 목적으로 인간복제를 시도했고 일부 테러국가에서는 유전자 무기가 연구되고 있다고 전해진다.
도킨스는 동물행동학 박사다. 그는 동물들의 행동을 연구하다 유전자의 비밀을 훔쳐봤고 학자의 본분대로 책을 펴냈다.
그의 유전자 이론이 악(惡)에 기여하든, 선(善)에 기여하든 그건 도킨스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 공동체 모두의 숙제다. 도킨스의 이론에 반대하는 학자도 많다.
그들은 도킨스의 이론이 극단적이라고 비난한다. ‘어떻게 인간이 유전자의 꼭두각시일 수 있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도 유전자의 영향력 자체를 무시하지는 못한다. 단지 유전자와 후천적 경험 중 어느 것이 인간본질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놓고 논쟁을 벌이고 있을 뿐이다. 도킨스는 지금도 옥스퍼드대학의 동물 행동학 연구그룹의 리더로 활약하고 있다. 그는 여전히 사회생물학 논쟁의 중심에 있으며 유머있는 문장과 논리적 구성력으로 대중적인 인기도 함께 누리고 있다.



○리처드 도킨스는 누구 케냐 출생 동물행동학자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는 2차대전이 한창이던 1941년 케냐의 나이로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케냐에 파견된 공군 군속이었기 때문이다. 케냐에서의 어린시절 경험이 그로 하여금 동물행동학자의 삶을 살게 한 큰 요인이 됐다. 그의 가족들이 다시 영국으로 돌아온건 1949년이었다. 평범하게 성장하던 그는 1962년 옥스퍼드대학 생물학과에 입학한다.
이 대학에서 그는 동물행동학 연구로 노벨상을 수상한 니코 틴버겐의 저자가 되면서 본격적인 학자의 길에 들어선다.
박사학위를 받은 후 캘리포니아 버클리대에서 조교수로 생활했고 1976년 그의 첫 저서인 ‘이기적 유전'을 옥스퍼드대 출판부에서 출간해 세상을 깜짝놀라게 했다.
이후 출간된 ‘눈먼 시계공(The Blind Watchmaker)' ‘에덴 밖의 강(River out of Eden)'도 학계와 독자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그의 부인이자 북디자이너인 랄라 워드는 도킨스가 낸 책들의 표지디자인을 해주고 있다.
도킨스는 현재 옥스퍼드대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동물행동학 연구 그룹의 리더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