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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화칼럼
노인 가구 화재예방, 우리의 관심이 필요할 때
현재 우리나라는 빠른 속도로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었고, 고령화 사회로의 진입기간 역시 다른 나라보다 빨라 상대적으로 화재에 취약한 노인 가구에 대해 예방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 봉화칼럼 전체 리스트 보기
 
 
사천 역사의 인물(1) 구암(龜巖) 이정(李楨)

  구암 이정과
순천부사(順天府使)
사단법인 구계서원 대관대 유계회, 사천향토사연구회, 사천향교 구암한시회, 상록봉사단, 시민 등 80여 명이 구암총서 발간사업으로 구암 이정 선생이 순천부사를 역임한 곳의 경현당(景賢堂), 옥천서원(玉川書院), 순천향교(順天鄕校)와 (구) 승주군청 앞에 있는 선정비 등을 답사했다.
옥천서원과 경헌당은 순천시 임청대길 18, 순천향교는 순천시 향교길 60에 있으며 옥천서원에서 5분 거리에 있다.
1. 생애
구암 선생의 본관은 사천(泗川), 자는 강이(剛而), 호는 구암, 맹주(孟柱)의 종손으로, 할아버지는 이번이고, 아버지는 증,호조참판 담(湛)이며, 어머니는 진주 정씨이다.
어릴 때 송인수(宋麟壽)로부터 배우고 성장한 뒤에는 퇴계 이황(李滉), 남명 조식(曺植)과 교유했다.
1536(중종 31) 진사로 별시 문과에 장원, 성균관 전적에 임명되었다. 다음 해 성절사의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그 뒤 예조정량을 거친 뒤 연로한 부모 봉양을 위해 경상도 선산 부사로 나 같다가 1552년(명종 7) 사성, 이듬해 청주목사를 지냈다. 이 때 선정을 베풀고 효행이 뛰어나 통정대부에 올랐다.
1555년 왜구가 호남 성에 침입하자 군기를 엄정히 해 구원하러 가자, 그 위엄에 눌러 왜구들이 도망했다.
1559년 우승부지, 형조참의, 좌부승지 등을 거쳐 이듬해 병조참의, 대사간, 호조참의, 예조참의를 지내고, 경주부윤으로 나가 옛 신라의 열왕묘(列王墓)를 보수하고 서악정사(西嶽精舍)를 세워 후진 교육에 힘썼다.
1563년 중앙의 요직에 잠시 있은 뒤, 다시 전라도 순천부사로 나가 갑자사화 때 사사 된 김굉필(金宏弼)을 위해 경헌당을 건립 그를 제사하게 했다.
1568년(선조 1) 홍문관 부제학에 임명되었으나 취임하지 않고 고향 사천에 구암정사(龜巖精舍)를 지어 동쪽에는 거경재(居敬齋), 서쪽에는 명의재(明義齋)를 만들어 후진 양성에 힘썼다. 성리학에 밝았다고 한다. 사천의 구계서원에 제향 되었다.
저서로는 구암문집, 성리유편, 경현록, 논상례, 한원보록, 열성어제, 등이 있다.(한국민족대백과, 한국학중안연구원)
특히, 순천향교의 구암 이정 선생에 대한 비석은 오랜 세월에 글자가 보이지 않아 탁본을 하여 내용을 찾기로 했다.
2. 구암 일가들의 묘(墓)
구암의 묘소는 임란 후에 이장하여 진주시 정촌면 대축리 산240-2 일대에 있다. 구암의 부인 심씨 묘와 자(子) 응인 부부묘, 구암 선생의 묘는 따로 묘단을 두어 부인의 묘보다 한단 높으며, 두 묘를 위해 다시 묘단을 두었다. 그 아래에 아들 응인 부부 묘가 있다.
구암의 3대조 묘소는 구계서원 옆 만죽산에 평장으로 선영이 한곳에 모여 있다. 부친인 이담의 묘비문은 남명(南冥) 조식(曺植)이 지었다. 구암 이정의 묘는 평장으로 이장, 흔적만 남아 있었다.
3. 구계서원
1611년(광해군 3)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이정(李禎)과 이황(李滉)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고 1645년에는 허목(許穆)의 글이 새겨져 있는 구산사비(龜山祠碑)가 건립되었다.
1676년(숙종 2)에 구계(龜溪)라는 사액을 받아 사액서원으로 승격되었으며, 1714년에 김덕함을 추가로 배향하여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였다.
홍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1869년 (고종 6)에 훼철(毁撤)된 뒤 서당으로 사용해오다가, 광복 후 유림들에 의하여 다시 복원되었다.
경내에는 유생들의 동재와 서재, 위패를 모셔놓은 묘당, 김덕함과 최관(崔瓘)의 기적비 등이 세워져있다. 구계서원은 사천시 사천읍 구암리 산 118번지에 있다.
참고문헌
·내고장 역사탐방(사천)(2015 국립진주박물관)
·사천의 역사와 인물(2016 김을성)

주필 김을성

2019년 05월 23일 11시 11분 /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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