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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물패 ‘반곱슬’의 유럽여행기 8. 부타페스트의 하룻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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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을 살아가면서 좋은 느낌을 받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기에 그런 만남은 더욱 소중한 법이다. 내가 여행을 좋아하는 것도 여행을 하는 동안은 이런 만남을 평소의 일상보다 더 많이 겪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여행이라는 것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만남을 열어두게 하기 때문인 것 같다.
이번 여행에서도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났다. 특히 체코 프라하에서부터 우리와 여행을 함께 하고 있는 하나누나는 그 밝은 모습에 함께 있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그런 내 모습이 표가 많이 나는지, 기존에 같이 다니던 사람들에게 질투를 사는 것 같기도 하다.
어제 늦게 오스트리아 빈에 도착한 우리는 오늘 저녁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야경을 보러가기로 했다. 하나누나도 우리 일정에 맞추었는데, 우리는 야경만 보고 뒷날 아침에 빈으로 돌아오고, 하나누나는 전체일정이 긴 만큼 부다페스트에서 더 머물고 올거라서 오늘밤이 하나누나와 함께 하는 마지막 일정이다. 정들자 곧 헤어짐이라니......
하지만 우리의 부다페스트 가기는 그리 수월하지 않았다. 하나누나를 만난 체코에서부터 이상하게 헤매면서 고생하고 다녔는데, 이번에도 헝가리로 가는 기차시간을 몇 분 남겨두고 민박집으로 가는 길을 잃어버렸다. 더군다나 그게 마지막 기차였기 때문에 그 기차를 놓치면 괜히 우리 때문에 하나누나의 일정이 꼬이게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누나와의 마지막 일정을 어영부영 보내기는 싫었다. 그런 조바심에 부다페스트에 꼭 가야된다는 일념하나로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몇 미터나 앞으로 뛰어다니며 길을 찾아 헤맸다.
민박집 아저씨에게 겨우 전화로 물어 민박집을 찾은 우리는 짐을 챙기고 얼마 남지 않은 기차시간을 위해 뛰고 또 뛰었다. 급한 마음에 하나누나의 배낭까지 들고뛰면서 온몸이 땀으로 흥건히 젖어서야 겨우 기차를 탈 수 있었다. 그래도 힘들다는 생각보다 괜히 기분이 좋을 뿐이다.
어렵게 부다페스트에 도착한 우리는 마음씨 좋은 현지 할머니가 운영하는 민박집에 짐을 풀었다. 우리가 야경을 보고 싶다는 말에 할머니는 못하시는 영어 몇마디와 헝가리어를 섞어 쓰시면서 땀까지 흘리시며 설명해 주셨다. 한참 설명을 들었지만, 우리가 가고자 하는 곳으로 가는 방법을 알아내긴 힘들었다. 단지 우리가 걸어서 얼마나 걸리냐는 말에
“텐 미뉴텍. 룩 어라운드!"
만 연발하시기에 우리는 ‘걸어서 10분 거리이니까 둘러보면서 천천히 가라'는 말인 줄 마음대로 알아듣고 지도만 달랑 들고 부다페스트의 거리로 나섰다. 하지만 걸어도 걸어도 시내 중심가는 나오지 않았다. 아마도 10분이라는 말은 버스나 트램을 이용하라는 말이고 내려서 천천히 둘러보며 찾아가라는 말 이였나 보다. 버스를 타려고 했지만, 이미 시간이 늦어 버스표 파는 곳은 문을 닫은 상태였다. 그렇게 부다페스트의 밤거리를 ‘룩 어라운드' 할 틈도 없이 무작정 2시간 가까이 걸어서야 왕궁과 시체니 다리가 뿜어내는 붉은 부다페스트의 야경을 찾아 낼 수 있었다. 그러자 금방 까지 걷다가 지친 모습은 사라지고 다들 사진을 찍고 감탄을 하느라 정신이 없다.
“그래도 우리 돌아 갈 때는 꼭 트램을 타고 가자."
그렇게 다짐을 했건만, 뜻밖에 만난 삼성전자 한국아저씨들이 사준 맥주를 마시며 한참이나 수다를 떨다가 나중에서야 트램이 끊겼다는 걸 알았다. 이미 시계는 자정을 넘어 있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또 걸어가지 뭐."
이렇게 마음을 먹고 나니, 돌아갈 먼 길이 힘들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하나누나와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이 밤이 길어지는 것이 더 기뻤고, 시간이 흐르는 것이 안타까웠다. 그리고 돌아가는 길은 다들 헝가리 맥주의 취기에 분위기가 한껏 올라 있었고, 조그마한 이야기에도 웃음 연발이다.
그렇게 인적이 드문 남의 나라 밤거리를 겁도 없이 웃고 떠들면서 돌아다니다가, 결국은 뒤통수를 맞고 말았다. 돌아가는 길에 허기가 져서 편의점을 찾아간 우리는 그곳에서 사기를 당하고 만 것이다. 헝가리는 아직 유로화가 도입되지 않아서 자국화폐인 포린트를 쓰는데, 포린트 화폐에 적응이 안된 우리의 헛점을 이용한 것이었다. 하나누나가 2000포린트를 내고 100포린트치를 샀는데 900포린트만 남겨주면서 우리더러 1000포린트짜리 지폐를 냈다고 우기는 것이 아닌가? 나는 당황하고 있는 하나누나에게 신경 쓰다가 무심코 1000포린트를 냈는데 똑같은 수법으로 당하고 말았다. 그렇다고 말이 통하는 것도 아니고 뻔뻔하게 다시 자기 일을 보는 사람에게 어찌 할 바가 없었다. 괜히 누나를 도와주려 하다가 나마저 당하고 나니 괜히 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져 누나얼굴을 보기가 부끄러웠다. 하지만 서로 어이없는 얼굴로 마주보며 웃고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지금까지 아무 일 없이 여행을 해왔는데, 이 정도면 다행이라며 다시 밝은 분위기를 되찾고 그 편의점 직원에게 욕을 시원하게 해대면서 집으로 향했다. 오늘 짧은 밤동안 이렇게 많은 일들을 겪으면서 마지막 밤의 추억을 많이 간직할 수 있게 되어서 기쁘다. 밤늦은 시간에 민박집에 도착했지만, 나는 바로 잠들지 못하고, 이렇게 일기를 적으며 아쉬운 밤을 정리했다.
‘부다페스트의 밤거리. 오랜만에 행복하고 즐거울 수 있었다. 부다페스트의 멋진 야경이 한몫 했겠지만, 함께 있고 싶은 사람과 함께 있어서 더 좋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내일이면 헤어져야겠지만 누구에게 좋은 느낌을 받는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이다. 다만, 내가 받은 좋은 느낌을 이 사람에게도 주고 싶은데 그것이 충분하지 않은 것 같아 아쉬울 뿐이다.'
다시 빈으로 향하는 기차 안.
하나누나도 우리와 함께다. 결국 사람이란 좋은 느낌, 정을 따라가고 싶은 존재인가보다. 서로 헤어지기 싫은 마음에 하나누나가 역까지 마중을 나왔다가, 함께 다시 빈으로 가자는 우리의 말에 금방까지만해도 부다페스트에 계속 머물 것 같이 계획을 짜던 누나는 우리의 말에 못이기는 듯이 응했다. 사실 어제 그렇게 사기까지 당한 곳에서 누나 혼자 남겨두고 우리만 떠나는 게 너무 걱정스러웠다. 아마 누나도 우리와 헤어지기 싫던 게다. 처음에는 그냥 여기서 헤어져서 다시 각자의 여로를 찾아가는 것이 아쉽지만 애틋한 기억으로 남는 게 나을 것 같았는데, 자연스럽게 인연이 이어지게 되었다. 하지만 다들 언젠가는 헤어져야하기에, 조금 연장된 인연이라도 더욱 애틋하게 느껴지는 게 아닐까? 그래도 조금이라도 더 함께 있으면서 즐거울 거라고 생각하니 행복해진다.
하지만 계속 함께 할 사람들에게도 소홀히 하지 말아야겠다. 어쩌면 내게 더 소중한 사람들 일 지도 모르니까. 그래 더 소중한 사람들이다. 서로 너무 오래 함께 했기에 그 가치를 서로 모르고 있을 뿐이다. 오랜만에 함께 한다는 것에 대한 좋은 느낌이 되살아난다.
여행 중반기. 처음에는 힘들기만 했던 여행이 조금씩 아쉬워 진다. 이 아쉬움이 조금씩 커져가다가 나중에 떠날 때가 되면 다시 가슴이 아려 오겠지?
행복하다.
■정 명 진
2003년 07월 03일 11시 23분 / 문화 Copyright (c) 1999 사천신문 Co.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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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칼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