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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삼천포 12차 농악” ‘진주’를 빼 달라 남양동민 서명운동, 보존회도 설득력

  중요무형문화재 진주·삼천포 12차농악의 명칭을 두고 지난 7월 29일 진주·삼천포농악보존회(회장 김선옥)가 명칭변경을 거론 했으나 명칭을 바로 잡지 못하자 이번에는 남양동 주민자치센터 통장, 조직단체장 연석회의가 열려 진주·삼천포12차농악의 명칭이 어떻게 될지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자료에 따르면 지난 10월쯤 진주·삼천포12차농악보존회에서 보존회 운영 및 전승활동의 어려움을 내세워 문화재청에 명칭 변경을 요청하면서 시에서는 명칭변경 의견을 수렴하고 1안 12차농악, 2안 사천12차농악, 3안 영남12차농악의 시안이 마련되었으나 지역명칭이 들어가야 한다는 문화재청의 방침에 따라 지역명칭이 들어간 사천12차농악이 유력시 되어 왔으나 지난 15일 남양동 주민자치센터 통장, 조직단체 연석회의에서는 농악발상지 주민으로서의 자존심에 관한일이라며 1안 남양12차농악, 2안 송천12차농악, 삼천포12차농악 등의 지역명칭을 살리려는 다양한 의견이 쏟아져 나왔다.
이날 연석회의에서는 많은 의견들 중에 1안 남양12차농악과 2안 사천남양12차농악으로 압축이 되어 최종 “사천 남양12차농악”으로 의견이 모아져 시에 제출키로 했다.
진주·삼천포12차농악의 유래를 거슬러 올라가면 삼천포 농악으로 불리던 남양농악의 발상지는 “송천매구”라 불리다가 “송포매구”“남양매구”로 불려오던중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남양면이 삼천포시에 편입되면서 ‘매구’라는 용어도 ‘농악’이라 바뀌면서 “삼천포농악”이라 불리게 되었다. 이때 부산에 있던 “행정시보사”에서 주최한 대회에 참가 3번의 우승을 거두었고 특히 1965년도 서울 경복궁에서 개최된 전국민속놀이 경연대회에서 농악부문 최고상인 국무총리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남양 송천마을 출신 문백윤 선생과 하동출신 황일백 선생 중심으로 서부경남 각처에서 활발히 활동했으며 특히 전국규모의 각종경연대회에서 최고의 영예를 차지하므로서 우수성과 지방 농악으로서 정통성이 인정되어 왔다. 이때 문화재 관리국의 무형문화재 지정조사가 진주성에서 이루어졌는데 문백윤, 황일백 선생이 상쇠와 부쇠를 맡아 시연했다.
마침내 1966년 농악부문에서는 처음으로 중요무형문화재 제11호로 지정되었고 이후 1986년 진주농악, 1993년에 지금의 진주·삼천포12차농악”으로 지정되면서 명칭이 변해왔다.
문백윤, 황일백 선생이 작고한 후 잠시 주춤하다가 두분 선생께 사사받은 박염, 김선옥 선생이 1982년에 기능보유자로 지정 받으면서 보존회가 결성되었다. 이어 1993년에 남양동지역(죽림동)에 전수관 건립이 확정되어 이듬해 1994년에 준공되었고 현재 전수관을 리모델링 중에 있다.
이같이 기형적인 명칭을 갖고 지금까지 굴러온 “진주·삼천포12차농악”에서 낭양동민은 ‘진주’라는 지명을 제외해 달라고 수차 건의 하였으나 그대로 이어져 오자 남양동민들이 올바른 명칭 찾기에 나선 것이다.
이날 연석회의에서는 “사천남양12차농악”으로 명칭을 바꾸어 달라며 전 통장과 조직단체들이 주민들의 서명을 받아 금명간 문화재청장에게 전달 할 것을 결의했다.
특히 진주시는 보존회가 사천시에 있다는 이유로 지원에 인색했다. 따라서 사천시는 전수관 운영과 관련해 연간 1500여만원 인간문화재에 월80만원 정도를 지원하고 있다.
이번에 ‘진주’라는 지명을 뺄 경우 시립풍물단 창단도 검토하고 있을뿐 아니라 가산오광대와 함께 사용할 수 있는 연합연수관 건립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이날 강석순 남양동 주민자치위 고문은 “남양 농악에 ‘진주’란 이름이 들어간 것에 오랫동안 불쾌하게 생각해 왔다”며 “이번 주민들의 의견과 같이 ‘사천남양12차농악”으로 명칭이 바꾸어 지기를 갈망한다”고 말했다.
취재: 이동호 편집이사
4000news@naver.com

2012년 11월 22일 11시 18분 /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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