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가까워질 때까지 농사일을 거들며 자랐습니다. 그놈의 농사일, 그리도 신물나게 지긋지긋 할 수가 없었지요. 누렇게 익어가는 보리밭, 벼논만 봐도 멀미가 나고 현기증이 일고 도통 밥맛이 없었으니까요.
시집나온지 10여년이 지난 지금에 돌이켜보니 새록새록 생각이 나는게 가슴 한켠이 저려옵니다. 어른이 된다는게 이런 걸까요?
학교 다닐때는 현충일이 보리 베는 날이었지요. 이른 새벽부터 늦은 저녁까지 너른 들에 나가 하루종일 일하셔도 표가 없는데, 그래도 잘하든 못하든 우리들 일손하나 더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시며 좋아하시던 부모님의 얼굴도 화안하게 떠오릅니다.
친구들은 공부한다고 토·일요일도 도시락 싸들고 공부하러 학교간다는데... 저는 이른아침먹고 7시쯤 낫들고 들판에 나갔지요. 평소에 무심코 지나가던 하루해도 그날 하루는 어찌 그리도 길던지... 일머리가 없어 힘으로 밀어부쳐 그런지 월요일마다 부르튼 입술에 커다란 물집을 훈장처럼 달고 등교를 했지요.
일이 삶 그 자체인 부모님이야 “일년 삼백육십오일 일을 달고 살아도 버텨내는데 고작 하루하고 엄살이냐?” 하셨지만, 손바닥도 터지고 팔·다리도 몽겨 며칠씩 고생을 했던 기억도 생생합니다.
더 어렸을때의 일입니다. 아슴아슴 생각날듯 말듯한 기억인데 대여섯쯤 되었나봅니다. 그땐 들판 띄엄띄엄 밀밭이 있었지요. 우린 누렇게 익어가는 밀을 한웅큼씩 훑어 볼이 미어지게 입안으로 털어넣고는 우물우물 씹어 밀껌을 만들어먹기도 했습니다. 입안가득 밀을 씹다가 밀기울이 고이면 뱉어내기를 여러차례, 어느새 하얀 껌이되어 혓바닥에 착 감기는 순간 그 즐거움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지요.
그 때는 밀을 씹으면 껌이 된다는 사실이 그렇게 신기할 수가 없었거든요.
밀을 수확하여 갈무리가 끝나면 방앗간이 있는 이웃동네로 국수를 빼러 갔습니다. 마을 사람 여럿과 날을 잡아 큰다라이에 밀을 이고가는 할머니 치마꼬리를 잡고 국수방앗간에 가본 기억도 어슴프레 떠오릅니다.
컴컴한 방앗간은 기계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방앗간 마당엔 하얗게 뽑아져나온 국수를 착착 걸어 말리던 모습이며, 굳이 자기 국수를 지키기 않아도 되었을텐데 한나절을 그 앞에 쪼그리고 앉아 우리 국수를 지키던 기억, 아침부터 그렇게 분주하게 시끌벅쩍한 마당이 우리같은 쪼무리개들한테는 더할나위없이 좋은 놀이터녔다는 것도...
하얀 국수발 사이로 햇살이 눈부시게 부서지는거며, 촘촘하게 고르게 드러누워있는 하얀 국수발 사이로 보이던 고운 하늘빛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국수가 다 마르면 적당한 길이로 잘라 가지런히 묶어 돌가루 종이에 싸서 다라이에 담습니다. 집으로 돌아올때면 붉으스름한 옷으로 갈아입은 서산저녁놀이 발길을 재촉했답니다.
아직도 가슴 한 구석이 아리도록 아름다운 내 어릴적 유월의 기억입니다.

신나고 재미있는 글쓰기학원장 장을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