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가 김해 공항 활주로를 내달린다. 과연 어디 쯤에서 기체가 떠오를까 유심히 창 밖을 내다보았다. 아찔한 느낌과 함께 정말 비행기가 ‘붕’ 떠올랐다. 공중에 떴다는 것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기체가 흔들린다. 비포장 길을 달리는 트럭을 탄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이다. 기장이 한국어와 일어로 안내방송을 했고 영어 방송은 외국인 승무원이 했다. 작년에 있었던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의 파업에 외국인 조종사와 대우차별이라는 이유도 있었던 것이 생각난다. 왜 항공사가 외국인조종사에게 특별대우를 하는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이 나라의 고질적인 사대주의 때문일 것 같아 씁쓸한 기분이다. 기내 서비스로 오렌지 쥬스가 나왔다. 평소에는 입에도 대지 않는 물건이지만 공짜이기 때문에 쪽쪽 소리가 날 때까지 깨끗이 빨아먹었다. 창가에 앉지 못한 것이 아쉬워 안전벨트를 풀고 복도로 나가서 창 밖을 좀 보려는데 벌써 착륙할거라는 안내방송이 들린다. 역시 멀고도 가까운 나라 일본이다. 구름에 국적이 있을까마는 비행기는 일본의 구름 바다를 향해 가파르게 내려가고 있다.
Welcome to Fukuoka! 두 번째 일본 여행이 시작되었다.

카고시마로 가는 길
후쿠오카 하카타 역을 출발했다. 비를 뒤로 하고 달려 쨍쨍한 햇빛 속으로 들어왔다. 기차는 JR큐슈의 츠바메(つばめ)，‘갈매기’이다. 일본 기차는 2매 이상을 구입하면 할인이 된다. 4매 할인권을 구입해서 제법 많은 액수를 절약할 수 있었다. 우리 일행은 나와 습지연대회의 사무국장 김경원, 제주도에서 온 관광통역가이드 좌명은, 제주도 간호사 한미숙 이렇게 4명이다. 일본에 왔으니 일본식으로 도시락 점심이다. 일본인들이 때마다 먹는 우매보시(매실 장아찌)가 김경원씨 입에는 안 맞는 모양이다. 왠만한 일본 음식은 다 입에 잘 맞는 내게 그 처리가 맡겨졌는데, 진짜 인간적으로 조금(?) 신 것은 사실이다.
기차가 쿠루메(久留米), 오무타(大牟田)를 지날 때 잠깐 잠이 들었는데, 어느새 야츠시로(八代)까지 왔다. 빠르다. 역시 신칸센이구나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신칸센은 후쿠오카와 도쿄사이만 다니고, 대신 우리가 탄 기차는 그냥 전철이었다. 야츠시로 역에 가까워지면서 '일본제지' 공장이 보인다. 굉장히 크다. 작년에 시라누이해에서 배를 타고 보았던 그 제지공장이었다. 동행했던 가오리상이 호주에서 펄프용 목제를 수입해 오고 있는데, 국제 환경단체들이 벌채반대운동을 펼치고 있다는 이야기를 아무런 감흥도 없이 했던 기억이 났다. 만약 그러한 반대운동 때문에 원목수입에 어려움이 생기면 제지산업도 어려워질테고 그것 때문에 야츠시로의 고용도 불안해 질 수도 있는데, 그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자신도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을뿐더러, 다른 사람들도 그런 신경은 안 쓰는 것 같다고 했다. 번번이 느끼는 것이지만 일본의 사회운동에는 한국에서 흔히 발견되는 연대의식, 통합적 인식이 없다.

개별화된 일본의 사회운동
차창 밖으로 아담하고 단정한 일본의 마을 풍경들이 보인다. 생울타리가 많고, 대나무도 많다. 높은 아파트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야츠시로를 지나면서부터 오른쪽으로 바다가 펼쳐졌다. 작년에 방문했던 미나마타병의 도시 미나마타와 두루미의 도시 이즈미를 지난다. 이즈미역에 두루미 상이 여럿 세워져 있다. 기차가 이즈미시를 통과하는데 두루미가 서식하기 위한 조건인 넓은 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인디언의 천막처럼 생긴 두루미 박물관이 보이나 찾아보았지만 볼 수 없었다. 갯벌이 화산해안으로 바뀌어 기기묘묘한 바위들이 지나간다. 현대 미술 조각품 전시회 같다. 평야가 끝나고 낮은 구릉지대를 통과하고 있는데, 논 가운데다 대나무를 이용해서 볏단을 거꾸로 걸어 말리고 있다. 며칠 전 전통적인 농법으로 농약, 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계단논에서 기른 쌀을 비싼 값에 도시 소비자들에게 팔고 있다는 후쿠오카 근교 어느 마을의 사례가 TV에 소개되었는데, 꼭 그 모양 그대로이다. 전통과 환경과 농민의 생활을 함께 지키는 길이 그곳에 있었다. 아쉽게도 이번 일정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다음 여행 때는 꼭 그 마을을 찾아가 보리라!
■이종명 사천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