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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음악의 도시 빈, 그리고 헤어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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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가끔 이런 사실을 망각하고 만남에 집착하면서 살아가기도 한다. 어쩌면 여행이라는 것은 이런 사실을 자연스럽게 체득하게 해주는 것 같다. 짧은 시간동안 많은 사람과 만나고 헤어지면서, 그 중에 설사 좋은 감정을 나누게 되는 사람이 있더라도, 시간이 되면 각자의 길을 떠나야 하는 법이라고. 배낭여행가 한비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길 위의 사랑이 아무리 진한 감정일지라도, 그것 때문에 주저앉지 않는다. 인연만큼만 사랑하고 인연 따라 헤어진다.’
오늘 우리는 야간열차로 스위스 취리히로 떠나고 하나누나는 빈에 남게 된다. 아쉬움의 마지막 날이지만, 오늘은 빈에서 풍물공연을 하기로 했기 때문에 우리의 여행에 충실히 하는 모습을 하나누나에게 보여주고 떠날 수 있을 것 같아 한결 마음이 놓인다.
원래 빈에서는 풍물공연을 할 계획이 없었는데, 어제 저녁 ‘요한스트라우스 오케스트라 공연’을 보고 나서 마음을 먹은 것이다. 난생 처음 세계적으로 유명한 오케스트라 공연을 가까이서 보고 들으면서 참 많은 것을 느꼈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 사물놀이 공연을 하고 있는 만큼, 음악공연이라는 공유감 때문에 더 깊이 와 닿을 수 있었다. 스스로 모두에게 충실하면서 이루어낸 완벽한 조화가 주는 희열이 무엇인지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우리의 상쇠 동진이도 이 공연을 보고 음악적 감흥을 많이 받았는지, 공연을 끝나고 나오면서 서로 ‘우리 내일 공연 정말 잘 해보자’면서 오랜만에 화이팅으로 마음을 모았다. 하지만 그럴수록 음악의 도시 빈에서의 공연이 더 큰 부담감으로 다가오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래도 가장 중요한 것은 최선을 다하는 것일 게다.
이렇게 공연을 하기로 마음을 먹고, 일단은 공연장소를 물색하기 위해 빈 시내를 둘러보기로 했다. 민박집 아저씨의 추천으로 케른트너 거리에 가보기로 했다. 그 거리는 차가 다니지 않는 보행자전용 거리인데, 매일 각종 공연이 열리고, 노천카페와 각종 상점들이 몰려 있어 사람들이 가장 많이 붐비는 곳이라고 한다. 민박집 아저씨의 말 그대로 케른트너 거리에서는 곳곳에 자그마하게 공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특히 거리가 끝나는 슈테판 성당 앞 광장에서는 여기 젊은이들의 댄스공연이 한창이었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둘러싸고 환호를 하고 있었다.
음악적 감흥이 충만한 곳. 나는 또 다시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공연에 대한 부담감으로 두려움이 생기기도 했지만, 내 가슴 다른 한 켠에서는 도전하고 싶은 욕망이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반곱슬 풍물패의 다른 사람들의 얼굴에도 생기가 돌기 시작한다.
우리는 슈테판 성당 광장 앞을 공연장소로 잡아 놓고, 다시 악기를 챙기기 위해 민박집으로 향했다. 민박집에서 악기를 챙기고 나오는데, 공연한다는 우리의 소식을 듣고, 민박집 형과 애들까지 같이 따라 나서면서 우리는 좀 더 힘을 낼수 있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공연이라는 것은 쉽게 이루어지는 법이 없다. 우리가 장소를 봐 놓은 곳에 도착했더니, 슈테판 성당 앞에 큰 무대를 설치해 놓고 밴드들이 리허설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민박집 형에게 물어보니 오늘이 예수승천일로 오스트리아의 국경일이란다. 그러니까 성당 앞에서 축하공연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것 참 낭패다. 일단 민복으로 갈아입긴 했지만, 시끄러운 밴드소리 때문에 우리의 사물소리가 제대로 들릴 리가 없었다. 사람들 얼굴에 또 다시 걱정과 초조함이 찾아온다.
‘이러면 안 되는데, 지난 번 체코에서도 하나누나에게 제대로 된 공연을 보여주지 못했는데. 헤어지기 전에 꼭 제대로 된 공연을 누나한테 선물해야 하는데......’
일단 나는 장소를 옮기기로 제안을 했고, 우리는 다시 거리 쪽으로 광장을 조금 빠져 나가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거리 한복판에서 악기를 메고 두드리기 시작했다. 눈으로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을 확인하면서 더욱 신이 난 우리는 정말 열심히 뛰면서 선반 공연을 마쳤다. 그리고 앉은반 공연을 위해 잠시 악기를 풀고 돌아보았을 때, 우리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거리를 완전히 메우고, 우리를 큰 원으로 둘러싼 관중들이 우리에게 환호와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사람들은 좀 점에 본 댄스 공연때보다 더 많은 것 같다. 전화위복이라고 광장보다 거리 안을 선택했던 것이, 소리가 거리의 벽에 부딪히고 울리면서 밴드소리는 묻히고 우리의 소리는 더 크고 신명나게 들렸다.
곧, 하나누나가 ‘PEACE OF COREA'가 적힌 플랜카드를 거리바닥에 깔고, 우리 네 명은 한쪽 귀퉁이씩 자리를 잡고 영남사물을 울렸다. 긴장된 쇳소리로 시작된 공연에 사람들이 숨을 죽이고 있다가, 마지막 있는 힘을 다해서 힘껏 두드리면서 판을 마칠 때는 사람들의 환호소리로 거리가 떠나가라 울린다. 곳곳에서 ’브라보!’가 터져 나오고, 몇몇 사람들은 우리에게 다가와 동전을 던져주기도 한다. 우리가 돈은 안받는다고 되돌려 주려고 하면 손에 꼭 쥐어주고 가는 사람도 있다. 하나 누나도 정말 좋았다면서 지금까지 따라다닌 보람을 느낀다고 다음에는 자기도 한번 배워보고 싶단다.
이렇게 열정을 뿜어내고 해가 진 빈의 저녁에는 어둠과 함께 헤어짐의 시간이 찾아왔다. 하나누나는 이번에도 역시 역까지 마중을 나와 주었다. 체코에서부터 서로 마음이 맞아 일정까지 변경해 가면서 여기까지 연장해 온 인연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더 억지를 부릴 일은 아니었다. 서로 각자의 여행을 위해서라도 떠날 때가 되었을 때 떠나보내 주어야 하는 것이다. 각자 남은 여행 동안 더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도록 빌어주면서, 또 다시 만나는 것은 인연에 맡겨 두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떠나는 기차 앞에서 겉으로는 편안한 웃음을 보이며 아쉬운 포옹을 나누고 우리는 기차에 올랐다.
만남과 헤어짐. 인생은 그것들의 반복된 흐름인 것 같다. 그리고 여행이라는 것이 만남과 헤어짐이 더 빠른 속도로 이루어지는 만큼 인생의 축소판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어쩌면 여행의 한달은 내 인생의 일년과도 맞먹을 지도 모른다. 그런 만큼 여행을 마친 나는 예전보다 좀 더 성숙해 있겠지? 헤어짐의 아쉬움에 젖어 계속 힘없이 있는 것 보다 남은 여행 동안 또다시 만날 설레임을 생각하고 힘을 내야겠다. 하지만 알프스가 기다리고 있는 스위스로 떠나는 야간열차를 안에서 나는 헤어짐의 아쉬움에 못 이겨 끝내 시(詩)한편을 토해내고 서야 잠이 든다.
여행 1
새벽기차는 이슬젖은
철길 위를 달린다
애써 웃음짓던 플랫폼은
지난 밤 암흑 속에 불빛으로 사라져버리고
이슬에 미끄러져 호수를 빠져나가는 기차는
이국적인 풍경으로 나를 달랜다
삶은 만남과 헤어짐이 엮어 낸
손수건을 한장 한장 모으는 일이라고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고
새로운 세상을 다시 바라보는 일이라고
기차는 알프스를 지나
다음 플랫폼을 향해 달린다
알프스가 아침햇살에 부서진다 2003년 07월 10일 12시 06분 / 문화 Copyright (c) 1999 사천신문 Co.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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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칼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