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밀을 외국에서 비교적 최근에 들어온 작물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신라, 백제시대 유적에서도 그 흔적이 발견될 정도로 우리 민족과 인연이 깊다. 보리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먼저 땅에 뿌리를 내려왔던 작물답게 밀은 끈질긴 생명력으로 우리 토양과 기후에 알맞게 스스로 적응하면서 자라왔다.
그래서 외국산 밀과는 반대로 우리밀은 벼와 다른 작물이 제 몫을 다하고 떠난 가을, 빈 논과 밭에 파종하여 추운 겨울 속에서도 푸르른 빛을 자랑하다가 봄에 거둬들이게 된다. 추운 날씨 속에 해로운 벌레들도 얼어 죽개 마련이어서 별다르게 농약세례를 받지 않고도 잘 자란다.
그러나 외국의 경우 밀 재배농가의 평균 면적이 우리의 150배 정도나 되고 대부분 먼 나라에 팔기 위해 밀농사를 짓기 때문에 재배 중에, 그리고 수확 후 저장과 수송을 앞두고도 엄청난 양의 농약과 방부제, 살충제를 뿌려댄다. 그래서 시중에서 사게 되는 수입산 밀로 만든 밀가루는 몇 년이 지나도 잘 썩지 않고 벌레조차 생기지 않는다. 거기에 또 방부제까지 넣어 만든 일반 제과점의 빵들은 그래서 잘 상하지도 않는다. 가끔 우리밀 빵들이 왜 그리 쉽게 상하냐고 이상해하는 소비자들이 있는데, 그 반대의 경우를 오히려 다시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한 때 전국에 밀 제분소가 3천 개소에 달했을 만큼 융성했던 우리밀 농사. 1967년까지만해도 27%이던 자급율이 한때 0.2%이하까지 떨어질 정도로 ‘구호물자’라는 이름으로 들어온 값싼 외국산 밀에 자리를 다 내주게 된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 사람들이 우리밀살리기운동본부를 만든 것이 1991년의 일이다. 한살림과 한국가톨릭농민회를 포함한 사회각계에서 꾸준히 노력해온 결과 밀 생산지가 점차 늘어났고, 어렵사리 제분에 성공하여 ‘우리밀 밀가루’를 공급하기 사작하였다. 꾸준히 늘어난 소비로 이제 우리밀 재배면적이 3,792헥타, 그 생산량이 12,623톤에 달한다(2004년의 경우).
이렇게 밀재배가 늘어나면서 겨울철에도 푸르른 들판을 보는 일이 드물지 않게 되었고, 그것이 사람들 눈과 가슴에 시원함과 푸근함을 가져다주고 있다. 추위에 뿌리가 들뜬 일을 꼭꼭 밟아준 후 파랗게 자란 밀밭에서 불피워 해먹던 밀사리, 푸르게 넘실대던 밀밭 물결에 대한 기억이 새롭다. 이렇게 세월의 눈보라를 이기고 자라난 우리밀의 생산기반이 더욱 확대될 수 있도록 소비자들의 성원과 지혜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