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선생의 「등신불」 창작 동기에는 두어 가지 설이 있는데, 그 하나는 어느 날 광명학원에서 학동들을 가르치고 있다가 절에 들어가 만해 일행에게 인사를 드리고 주지 효당이 베푸는 다회에서 끓인 입차가 다완에 부어지는 동안 만해는 중국 고승전에 나오는 ‘소신공양 ' 이야기를 하게 되고 이야기를 듣던 동리 선생은 머리 위에 벌겋게 달은 불덩어리 향로를 쓰고 합장한 채 자기 몸을 스스로 불태워 성불에 이른다는 이야기 부분에서, 선생의 몸에 소름이 끼치고 아래턱이 덜덜 떨려 견딜 수가 없었다는 비교적 구체적인 사실을 전하는 설과.
동리 선생이 다솔사에 기거할 당시에 다솔사 주지 최범술과 김범부 김법린 등은 불교혁신과 더불어 상해 임시정부에 군자금을 전달하는 등 독립 투사들을 돕는 일을 맡은 만당( 卍黨)의 활동 계획을 추진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으므로 중국을 내왕하는 독립 투사들로부터 전해들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래저래 전해들은 것은 마찬가진데 「등신불」전개부분 초반 정원사로 들어가며 느낀 첫인상 묘사와 또 만적의 소신 공양을 하는 절정 부분을 인용하면,

우리가 정원사 산문 앞에 닿았을 때는 이튿날 늦은 아침녘이었다. 경암은 푸른 수풀 속에 거뭇거뭇 보이는 높은 기와집들을 손가락질로 가리키며 자랑스런 얼굴로 무어라고 중얼거렸다.
산문을 지나 정문을 들어서니 산무더기 같은 큰 다락이 정면에 버티고 섰다. 현판을 쳐다보니 태허루라 씌어 있다. 태허루 곁을 돌아 안마당 어귀에 들어서니 정면 한가운데 높직히 앉아 있는 가장 웅장한 건물이 법당으로 짐작이 가나 그 양옆으로 첩첩이 들어앉은 무수한 집들이 모두 무슨 이름에 어떤 구실을 하는 것들인지 첫눈에 그저 황홀하고 얼떨떨할 뿐이었다.
소신공양은 오시(午時) 초에 장막이 걷히면서 시작되었다. 5백을 헤아리는 승려들이 단을 향해 합장하고 선 가운데 공양주 스님이 불 담긴 향로를 받들고 단 앞으로 나아가 만적의 머리 위에 얹었다. 그와 동시에 그 앞에 합장하고 선 승려들의 입에서 일제히 아미타불이 불러지기 시작했다. 만적의 머리 위에 화관같이 씌워진 향로에서 점점 더 많은 연기가 오르기 시작했다.
이미 오랫동안의 정진으로 거의 화석이 되어가고 있는 만적이지만 불기운이 그의 정수리를 뚫었을 때에는 저절로 몸이 움찔해졌다. 그리하여 그때부터 눈에 보이지 않게 그의 고개와 등 가슴이 조금씩 앞으로 숙여져 갔다. 들기름에 절은 만적의 육신이 연기로 화하여 나가는 시간은 길었다.
그러나 그 앞의 500의 대중은 아무도 쉬지 않고 아미타불을 불렀다. 신시 말에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그러나 웬일인지 단 위에는 비가 내리지 않았다. 만적의 머리 위에는 더 많은 연기가 오르기 시작했다. 군중은 신기한 일이라고 눈이 휘둥그래져서 만적을 바라보았을 때 그의 머리 위에는 보름달 같은 원광이 씌워져 있었다.

푸른 수풀 사이로 거뭇거뭇 보이는 높은 기와집이나 정문을 들어서니 산무더기 같은 큰 다락이 정면에 나타나는 태허루는 다솔사의 대양루를 연상하게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동리선생은 독립운동을 하러 중국 등지를 내왕하던 승려들의 이야기를 듣고 어느 날 대웅전 앞뜰이 내려다보이는 객사에 앉아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모습에서 만적의 소신 공양을 떠올렸을 것이라는 것이다.
인용되는 전개 부분에 묘사되는 장면 과 다솔사의 배경이 사뭇 일치하고 있는 점을 찾을 수 있다. 물론 작품 배경이 어떤 특정한 공간만이 반드시 절대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단언하는 것은 무리일 수 있으며, 실증 여부를 따져 밝히는 일에 소모적일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다. 역사의 고증 필요성으로 제기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므로.
마침 다솔사에는 삼천년 만에 핀다는 불가의 전설의 꽃 우담바라가 피었다고 대양루 큰 북 앞에는 사람의 행렬로 장사진을 이루었다.
육안으로 선명하게 보이지 않기 때문에 절에서 설치한 확대경을 통하여 보자니 자연히 줄을 서서 순서를 기다릴 밖에. 그런데 삼천년 만에 핀다는 꽃이 근년에 들어 우리나라 전국 여러 사찰에서 발견되는 바, 우담바라 이야기로 잠시 곁가지를 달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