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부터 전파를 타기 시작한 공익광고 가운데 하나.
생기 넘치고 평온해 보이는 어느 한 고등학교. 잠시 후 '지금부터 욕설이나 은어를 쓰지 않고 말해보세요'라는 신(scene) 스크립터가 지나간다. 그러자 학교는 정적에 휩싸인다. 학생들은 더는 말을 잇지 못하고 표현을 하지 못함에 무척이나 괴롭고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입을 뻐끔거리는 금붕어 위로 짧은 문구 하나가 떠오른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길거리를 지나다 보면 남녀 청소년들이 무리지어 서 대화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한데 이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유심히 들어보면 꼭 말 끝마다 비속어들이 섞여 있을 때가 많다. 대표적인 것이 ‘씨×', ‘존나·졸라', ‘미친×', ‘쪼개다' 등이다.
청소년 언어 사용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우려는 벌써 수년 전부터 계속돼 왔다. 이에 대한 연구도 진행돼 이화여대 교육대학원 국어교육과 이윤지 씨는 지난해 2월 <청소년의 비속어 사용 현상 연구>라는 제목의 석사논문을 발표했다.
지난 2011년 5월부터 9월까지 5개월여 동안 서울 소재 고등학교 1학년 남학생 2명을 대상으로 일상생활에서 친구들과 지내면서 나타나는 언어 사용 양상을 연구했다. 분석 결과 이들 청소년들 간 대화에서 사용된 어절 5085개 중 비속어가 745회 사용돼 전체 18.4%를 차지했다. 비속어 유형은 105개로 나타났다.
이 중에서도 ‘씨×'이 가장 많은 빈도를 나타냈고, 변이형까지 더하면 모두 104회에 달했다. ‘존나·졸라'(90회), ‘미친×'(57회), ‘병신'(50회)이 뒤를 이었다.
문제는 청소년들이 이들 어휘가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 모른다는 데 있다.
청소년 비속어 사용 행태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자 학교들은 '비속어 교육'을 통해 학생들이 올바른 언어 습관을 갖도록 하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는 이런 ‘비속어 교육' 현장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고 있다. 현직 남자고등학교 국어교사인 저자 권희린은 어느 날 한 수업시간에 육두문자를 남발하는 학생들에게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듣고 있던 학생들이 펼친 역공. “왜 비속어를 쓰면 안돼요." 저자는 잠시 생각하다 “우린 교양인이니까"라는 말로 에둘렀다.
저자는 잠시 멍해졌다. 자신조차 비속어를 쓰면 안 되는 이유가 납득이 되지 않았다. '비속어 수업'은 그렇게 시작됐다. 저자는 수업을 통해 답을 구하는 과정에서 비속어를 쓰면 안 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알고 써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나는 비속어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쩌면 비속어는 우리의 삶에 끼어들어 우리의 일상을, 우리의 대화를 말랑말랑 하고도 재미나게 만들어주는 촉매제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 적절하게 써야 할 타이밍이 있다면 쓰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만 … 비속어를 쓰려면 잘 알고 써야 한다는 것이다."
권희린은 이러한 비속어를 ‘B급 언어'라고 칭한다. 세상에서는 루저로 통할지 모르지만 그 나름대로 솔직하고 당당한 매력이 다분하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싸이의) ‘강남스타일', ‘젠틀맨'은 어떤가? 뭔가 특별한 것도 없고 내세울 것도 없어보이지만 촌스럽고 저질스러운 B급의 정서가 세계인을 움직인다. …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무미건조한 삶을 유머러스하게 만드는, 빵빵 터뜨리게 해 주는 언어, 이런 언어들의 공로를 어느 정도 인정해줘야 하지 않을까?"
는 일상 언어로 자리 잡은 비속어 70여 개를 정리했다. 비속어마다 어떤 의미인지, 무엇을 표현하고자 쓰는 말인지, 언제 어느 상황에 써야 하는 말인지 알려준다.
저자가 겪은 에피소드들도 들려준다. 특히 교육 현장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이 흥미진진하다. 이를테면 학생들이 가장 즐겨쓰는 비속어 ‘존나'. ‘매우', ‘많이'로 알려진 이 어휘는 원래 ‘남성의 성기가 튀어나올 정도'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학생들은 “존나 짜증나", “존나 이쁘네", “존나 열받네" 같은 낯 뜨거운 황당한 욕을 아무런 죄책감이나 수치심을 느끼지 않고 말한다. 심지어 수업 중 “선생님 칠판이 존나 안보여요", “아, 교실 존나 더워"라는 말을 스스럼 없이 한다.
황당한 건 보통 이런 말을 하는 학생이 그나마 수업 시간에 잘 참여하는 모범생이라는 점. 저자는 “보통 공부할 마음이 없으면 수업 시간에 뭘 하는지 관심도 없고 선생님에게 질문도 하지 않는 데 비하면 낫다"며 오히려 자신을 위로한다. 대신 이런 학생들을 향해 저자는 “어디서 실실 ‘쪼개고' 있어"라며 맞받아친다. 이것이 저자가 말하는 즐거운 대화의 촉매제가 되는 ‘B급 언어'의 역할이다.
한데 아무리 삶에 즐거움을 준다고 비속어 사용을 하릴없이 권장할 수 없는 일. 저자는 적절한 대체어로 비속어 순화를 위한 길잡이 역할도 빼놓지 않는다. 남성 성기를 희화화한 ‘좆같다'는 ‘꽃같다’, 불륜 성교 현장을 묘사하는 ‘빼도박도 못하다'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 일본말 페인트와 한국어 접미사인 ‘~하다'가 더해진 ‘뺑끼치다'는 ‘요령을 피우다' 등으로 말이다.
‘B급 언어'에 젖어 사는 아이들은 물론, 무슨 말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아이들을 야단치려 드는 어른들까지 두루 읽어도 좋을 책이다. ‘SNS 시인' 하상욱의 시 문법을 차용한 중간 제목들과 통통튀는 글솜씨가 읽는 내내 입가에 미소를 짓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