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를 잃고 보호받지 못한 여성들이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마수에 끌려가 성노예로 살아야했던 참혹한 세월이 있었다.
나라를 되찾은 지 70년이 됐건만 일제로부터 진정한 사과도 받지 못한 채 하나 둘 세상을 하직했다. 몇 남지 않은 생존자는 일본을 향해, 세계 여론을 향해 일제의 사과와 정당한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의 일본 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피끓는 고발을 들었던 스위스 인권운동가 제안으로 영국 미술가가 필리핀, 대만 등 3국 위안부 피해 생존자 53명의 손을 거칠게 그려 조형물을 만들었다.
제네바 유엔본부에 설치하려고 했던 이 조형물이 돌고 돌아 미국을 거쳐 경남도에 기증돼 국내 첫 전시회가 열린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위안부 피해 여성이 가장 많았던 경남에서 열리는 의미 있는 전시회다.
경남도가 오는 13일부터 30일까지 경남도립미술관에서 개최하는 '기억의 초상-역사에 묻힌 상처와 인권'이라는 주제의 특별전시회 중 하나인 '폭력의 흔적' 조형물이 그것이다.
이 작품은 그동안 미국 필라델피아 펜아시안 노인복지원 최임자 원장이 지난 8년간 소장하다가 최근 경남도에 기증하면서 전시회가 열리게 됐다고 도립미술관은 4일 밝혔다.
경남도립 거창대 김정기 총장이 2014년 미국을 방문했다가 우연히 최 원장이 이 작품을 보관하는 것을 알게 된 것이 계기가 됐다.
김 총장은 홍준표 경남도지사에게 이러한 사실을 알렸고, 홍 지사 요청을 받은 최 원장이 작가 동의를 받아 지난 6월 기증했다.
1998년에 제작된 이 작품이 17년 만에 위안부 피해가 컸던 한국에서 첫선을 보이는 것이다.
이 작품은 1991년 고(故) 김학순 할머니가 일본군 위안부 참상을 증언하고 나서 스위스에 본부를 둔 유엔 국제화해조절기구(IFOR) 임원이었던 인권운동가 조나단 씨쏜(Jonathan Sisson)이 영국 미술가 앤드류 워드(Andrew Ward)에 권고해 제작했다.
두 사람은 이 작품을 만들려고 1998년 한국과 필리핀, 대만 등 3개국을 방문해 53명의 위안부 생존자를 직접 만났다.
할머니 한 사람 한 사람의 굴곡진 손마디를 펴게 해 화선지 위에 목탄으로 그린 다음, 지장을 찍고 날짜를 넣고서 육성 녹음까지 했다.
이 그림들을 투명한 아크릴 사이에 넣고 반원형의 대형 병풍식 조형물 두 개를 제작해 '폭력의 흔적'을 완성했다.
조형물 하나가 높이 2.2m, 너비 4m 크기다.
보는 사람이 '와'라는 감탄사를 자아내도록 하는 이 작품은 그림 하나하나에 들어간 할머니 손에서 힘들고 지친 삶을 알 수 있도록 잘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작품은 애초 제네바 유엔본부에 설치하려 했으나 무산됐다.
유엔본부에 설치하는 작품들은 반드시 어느 국가의 추천이 있어야 하는데 위안부 피해국 중 어느 나라도 경제대국 일본의 오십 년 전 범죄를 들춰내 일본의 신경을 건드려 불이익을 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 작품은 1999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처음 전시되고 나서 남아메리카 공화국, 대만, 미국 등지에서 전시됐다.
가는 곳마다 피해자가 아닌 제3의 목소리로서 일본의 대인류 범죄를 규탄하고 그들의 잘못된 태도를 비판하는 경종 역할을 했다.
2004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아시안 홀로코스트 박물관에 대여 전시를 했다가 영구 전시품으로 기증했지만 2006년 이 박물관이 재정난으로 문을 닫으면서 최 원장이 이 작품을 보관하게 됐다.
최 원장은 “이 작품은 훌륭한 예술품이기도 하지만 일본의 대인류 범죄에 대한 객관적 증거가 되는 귀중한 작품이다"며 "다시는 이런 고통과 아픔이 반복되는 일이 없도록 역사적 교훈자료로서 잘 보관돼 많은 사람에게 보여줘여 한다"고 전했다.
'폭력의 흔적' 전시회는 오는 13일 오후 2시 개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