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가을을 남자의 계절이라 했던가? 그이가 2박3일의 일정으로 여행을 떠났다.

매년 여름휴가를 받으면 달랑 배낭하나 꾸려 지리산으로 강원도 골짝으로, 서해안에다 동해안, 물 건너 제주도를 일주일씩 떠돌아 다니다 패전병 몰골을 해서 돌아오던 그이가 이번엔 “진도"란다. 그것도 퇴근 후 거나하게 술을 한잔 걸치고 어제저녁, 아니 오늘 새벽 1시가 넘어서 집에 들어온 그는 간도 크게 겁도 없이 대뜸 여행을 가겠다고 했다.

갑자기 뭔가에 한 대 얻어 맞은 듯, 순간 할 말을 잃은 나에게 더 이상 다른 말이 필요하겠냐는 듯이 허락해 달라는 말을 그이 특유의 강렬한 눈빛으로 대신한다. 하긴, 지난 여름 결혼 8년만에 겨우 우리손으로 아파트하나 전세 얻어 이사오긴 했지만 3개월 가까이 직장파업으로 월급한푼 들여 주지 못해 가장으로서 미안하기도 했을테고, 쟁의기간 동안 사측과의 타결되지 않는 갈등, 노조원 사이의 미묘한 감정대립 등을 술로만 해결해 왔던 그의 혼란스런 심정을 모르는 바 아니어서 선뜻 허락해 주고 말았다. 옛 말에 삶은 길이고 인생은 그 길의 나그네라고 했던가? 또 사람은 집을 떠나봐야 더욱더 성숙해 진다고 하지 않던가?

그이는 2박3일을 어떤 생각, 어떤 모습, 어떤 계획으로 꾸려서 돌아올까?
부디 그이의 여행이 앞으로의 생활에 바닷바람처럼 알싸한 청량제가 되었으면 좋겠다. 온전한 사랑이 상대가 필요로 하는 것과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것이라면 내일 모레 돌아오는 그를 맞이하기 전에 나도 뭔가 달라져야 겠다. 그이 없는 첫날밤은 이런 저런 생각으로 마음과 몸을 뒤척인다.

<장을녀 향촌동 대망맨션 20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