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신문 | 봉화대(생활광고) | 사이버사천
2017. 11.22 08:06

곤명면(昆明面)

곤명면은 사천시의 최서북단(最西北端)에 위치하고 지리산지맥이 옥산을 거쳐 송비산으로 이어진 소실골과 이맹산에서 이어져 봉명산으로 매듭지어진 초량골, 또한 천황봉 영천(靈泉)이 덕천강으로 이어져 완사들과 금성평야와 충적지대를 이룩한 그 사이의 유서 깊은 땅이다.

동쪽으로는 진주시 내동면과 인접하고, 동북쪽과 북쪽은 대평면과 수곡면에 인접하며, 서북쪽과 서쪽은 하동군의 옥종면과 북천면에 접하고, 동남쪽과 남쪽은 곤양면에 인접하고 있다. 예부터 진주목의 한 속현인 곤명현을 살핀다면 아득한 상고시대부터 생활터전의 중심지였음을 알 수 있다.

곤명의 유래를 살핀다면 신증동국 여지승람의 곤양군조에 “곤양군은 본래 고려의 곤명현이다. 신라 때의 칭호는 자세하지 못하고 현종이 진주에 예속시켰다”고 기술하고 있다.

여러 가지 문헌의 기록에 의하면 곤양군은 “본래 신라의 포촌현인데 경덕왕 16년(757)에 하읍이라 고쳐 하동군의 영현으로 삼았다. 고려 태조 23년(940)에 곤명으로 고쳤고 현종 9년(1018)에 예속 시켰다가 뒤에 감무를 두었다.

조선조 세종원년(1419)에 어태를 안치함으로써 남해현을 합쳐서 곤남군으로 높였다가 세종 19년(1437)에 다시 갈라서 남해현을 설치하고 진주의 금양부곡을 내속시켜 곤양군으로 고쳤다.”고 한다. 이때 곤명리가 되었고 숙종 1년에는 오가통사목(五家統事目)에 의하면 곤명리는 초량면, 소곡면, 성방면, 곤명면 등 4개면으로 구분되고 계속 곤양군에 속했다. 고종 32년(1895)에는 8도제를 폐지하고 23부제를 시행하면서 곤양군으로 사천군에 편입되었다가 곧이어 곤양군으로 환원되었다.

1914년 지방 행정구역 폐합으로 곤양군을 그 관할 구역 10개면을 사천군과 하동군에 분할 이속하고 해체 되었다. 이때 초량, 소곡, 성방, 곤명 등 4개면은 합해져 곤명면이 되고 행정 16개리를 소관했다. 한편 진주군 축곡면 연향동(蓮香洞)이 본면에 편입되어 조평동(助坪洞)과 합쳐져 연평리가 되었다. 1956년 읍면자치제의 시행으로 곤명면의 법정 16개리와 행정 27개리로 분리 소관하여 오다 진양호 확장으로 정곡(正谷), 두인(斗印)마을이 이주하고 25개리로 소관하고 있다.

-금성리 : 금성, 장신
-마곡리
-본촌리 : 본촌, 양월
-봉계리 : 원전, 오저
-삼정리
-성방리
-송림리
-신흥리 : 만지, 고월
-연평리
-용산리
-은사리 : 은사, 옥동
-작팔리 : 작팔, 구몰
-정곡리 : 완사, 신기
-조장리
-초량리
-추천리 : 오사, 추동, 신산


<자료출처:사천지명지>

Copyright (c) 1999 사천신문 Co.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