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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06.24 07:25

사남면(泗南面)

사남면의 지세는 북쪽을 고성군 무이산의 산맥이 내려와 니구산과 성황산이 두르고 또 동남에서 뻗어 내린 와룡산의 줄기가 빙 둘러 감싸고 있기 때문에 남북으로의 폭은 2km, 동서의 깊이는 14km로써 길쭉하게 생겼다. 이 때문에 서쪽 해안가의 일부만 평야를 이룰 뿐 대부분의 산간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산간지는 죽천강이 흐르는 협곡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죽천강이 흐르는 강가에는 청동기시대의 유구인 고인돌 무덤이 많이 발견되어 먼 선사시대부터 농경생활을 영위했던 고장이라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남방불교의 전래설이 짙은 귀룡사(歸龍寺)와 부도곡, 그리고 흥보사(興寶寺) 등의 큰 사찰이 있었던 점으로 미루어 옛날에는 불교가 번창한 곳이라 여겨진다.

능화의 꽃밭등은 고려 8대 현종의 아버지 욱(郁)이 귀양살이하다 죽은 후 무덤이 있는 곳이라 능화라 붙여진 이름이다. 그리고 임진왜란 때는 선진리성의 왜적과 조명연합군이 격전을 벌였던 전적지가 병둔 및 당병소란 이름으로 내려온다. 그리고 사람들은 심성이 후덕한 탓으로 예로부터 역사적인 인물은 많지 않으나 효자, 효부가 많이 나와 8효문(八孝門)을 비롯해 개인을 기리는 기적비가 많다.

본래 사천군 지역으로서 1907년 지방구역 정리에 따라 근남면(近南面)과 상서면(上西面)으로 분립되어 있었다. 근남면은 병둔동, 화전동, 예의동, 구룡동, 우천동, 능화동, 연천동, 가천동, 종천동, 소산동, 사월동, 대산동, 진목동, 용양동의 14개 동리를 관할하였고, 상서면은 초전동, 방지동, 용두동, 죽천동, 도동동, 지내동, 월성동, 조동, 유천동의 9개 동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4월 1일 부령 제111호로 군면폐취 분할시 합하여져서 근남면의 14개 동리와 상서면의 9개 동리, 남양면의 분계동, 송암동, 하서동 일부를 병합하여 읍서면(邑西面)이라 개칭하고 11개리를 관할하였다. 당시의 면소재지는 죽천리에 있었고, 개편내용은 다음과 같다.

-가천리 : 근남면의 가천동
-계양리 : 남양면의 분계, 송암동 일부와 근남면의 용양동
-방지리 : 상서면의 방지, 초전동 일부
-사촌리 : 근남면의 사촌, 대산, 남양면의 송암동 일부
-우천리 : 근남면의 우천, 능화, 연천동
-월성리 : 상서면의 지내 월성, 초전, 죽천동 각 일부
-유천리 : 상서면의 조동, 월성, 하서면의 용당동 각 일부
-종천리 : 근남면의 종천, 소산동
-죽천리 : 상서면의 용두, 초전, 죽천, 중남면의 연포동 각 일부
-초전리 : 상서면의 월성, 죽천, 초전, 중남면의 연포동의 각 일부
-화전리 : 근남면의 도동, 병둔, 화전, 예의, 구룡동

1931년 4월 1일 부령 제12호에 의한 읍면동제가 개정됨에 따라 그 해 8월에 읍남면이던 것을 사남면이라 개칭하였다. 이 무렵에 면사무소는 죽천리에서 화전리 도동으로 옮겼다. 그 후 1960년 3월 17일 화전리 병둔마을로 다시 옮기고 지금에 이르렀다.

현재 11개 리동(행정 리동 25개, 자연마을 32개)으로 관할하고 있다. 면의 위치는 동쪽에 고성군 하이면, 상리면, 남쪽은 용현면, 서쪽은 사천만에 임하여 바다 건너 곤양면과 축동면에 이르고, 북쪽은 사천읍, 정동면에 닿는다.


<자료출처:사천지명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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