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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봉산은 사천읍 수석리에 있었는데
지금은 농경지와 비행장 부지로 변하였으나 일제말기만 하여도 이 들판에 남북으로 직선 100m 쯤의 간격으로
사람이 만든 조그마한 봉우리가 5개소 있었고, 못(沼)이 5개소가 있었다.
이 오봉산에 얽힌 전설을 살펴보면 지금으로부터 300여년 전 사천고을에 '영호'라고 하는 백정이 살고 있었다.
그때는 지금과는 다리 양반과 상노의 신분의 차이는 마치 하늘과 땅 같아서 똑 같은 사람이면서도 상노는 양반을
하늘처럼 받들어야 한다. 상노 중에서도 가장 괄시를 받던 사람은 좌당, 광대들이었는데, 이들은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마을에서 살지 못하고 동구 밖에서 따로 모여 살아야 하는 아주 천한 신분의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영호는 백정노릇을 해서 많은 재산을 모아 돈 많은 부자가 되었지만 제 아무리 돈이 많아도 백정은
역시 백정이어서 어린 아이들은 물론 같은 상노까지도 마구 반말을 하였다. 이에 분통이 터진 영호는 밤마다
양반 흉내를 내면서 왔다갔다하여 “어헴! 양반이 따로 있나. 도포 입고 망건에 갓 쓰면 양반이지, 양반이
이런 맛에 큰소리치고 거드름 피우고 다니는구나?” 영호는 아무도 없는 허허벌판에서 양반 행세하며 가슴에
맺힌 한을 풀었다.
그러나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그날도 다른 때와 같이 양반 차림을 하고 연신 헛기침을 하며 뒷짐을 진
채 밤길을 걷고 있었다. 그때 저만치 횃불을 든 마을 사람들이 떼를 지어 소리치며 몰려오자 당황한 영호는
가던 길을 되돌아 가려해도 도망갈 수가 없었다. 허허벌판이라 어디 숨을 곳도 없자 기왕 당하는 일이니 될
대로 되라는 생각에서 여전히 양반 행세를 하며 의젓하게 걸어갔다. “네 이놈! 감히 어디라고 양반이 가는
길을 막느냐?”하며 조금도 당황하는 기색 없이 큰소리를 쳤지만 마을 사람들을 밤마다 양반행세를 하고 있는
사람이 영호라는 걸 먼저 알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영호를 김진사 집으로 끌고 갔고, 영호는 그곳에서 상놈이 양반 행세를 하였다는 죄로 모진
매를 맞고 숨을 거두었다. 영호는 “김진사 이놈 내가 죽어 귀신이 되어 오늘 당한 이 억울함을 기어이 앙갚음하고
말 것이다.”하며 두 눈을 부릅뜬 채 매를 못 이겨 숨을 거두고 말았다. 김진사는 영호의 시체를 큰길 옆
미루나무에 매달아 상놈들에게 본보기를 보여주게 하였다. 동구 밖 미류나무에 매달려 있는 시신을 오가는 사람들이
보게되고 까마귀 떼가 뜯어 아무렇게나 버려졌다.
그로부터 며칠 후 원통하게 죽은 영호의 시체를 가족들이 거두어 장사지냈는데 이런 일이 있은 지 바로 이듬해
봄에 사천 고을에서는 아주 괴상한 일이 여기저기에서 일어났다. 밭갈던 소가 쓰러져 죽더니 그 뒤로 계속
소가 죽어갔다. 외양간에서 여물을 먹던 소도 죽어가고, 개, 돼지 등 가축이란 가축은 모두 다 죽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밤에 김진사댁 머슴인 장쇠가 장에 가서 김진사의 생일장을 보아 소에 싣고 동구 밖 고개
마루를 막 넘어 오는데 갑자기 소가 요동을 쳤다. 그러자 먹장 같은 구름이 일고 광풍이 불더니 시퍼렇게
날이 선 도끼를 든 귀신이 나타나 쓰러져 있는 소를 도끼로 치니 황소는 머리통이 갈라지면서 괴상한 비명을
지르더니 이내 죽고 말았다.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장쇠는 그만 까무러치고 말았다. 도끼를 들고 날뛰던
귀신은 작년 가을 김진사에게 매를 맞아 죽은 영호의 생전 모습과 똑 같았다. 그 모습이 얼마나 처참한지
이루 마로 다 표현할 수 없었다. 머리는 산발하고 갈기갈기 찢어져 피로 얼룩진 도포를 입었으며, 형체도
알 수 없는 찢어진 갓을 쓰고 양손에는 날이 시퍼렇게 선 도끼와 우도(소를 잡을 때 쓰는 칼 종류)를 들고
있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정신이 든 장쇠는 비명을 지르며 죽을힘을 다하여 마을로 뛰어와 진사에게 자초지종을 아뢰었는데
진사는 곧이 믿으려 하지 않았다. 장쇠가 헛것을 보았다고 단정한 김진사는 그 말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날이 갈수록 백정귀신을 보았다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소와 가축은 죽어 갔다. 그리하여 마을 사람들은 굿을
하고 제물을 차려놓고 제사도 지내 주었지만 모두 허사였다. 백방으로 손을 썼지만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그믐날 밤에 그 날도 어느 때와 같은 글을 읽고 있는데 방문이 스르르 열리더니 시꺼먼 그림자가
방으로 들어왔다. 이에 놀란 원님은 온 몸이 사시나무 떨듯하였지만 자세를 바로 잡고 호통을 쳤다. “대체
너는 어떤 귀신이길래 야밤에 이렇듯 추한 몰골로 관아에 나타나 흉물을 떠느냐?” 원님에게 나타나 백정귀신이
“소인은 양반 흉내를 낸 죄로 김진사에게 맞아 죽은 백정 영호의 혼입니다. 소인의 억울한 죽음을 통찰하시와
곤장을 때려 죽게한 김진사를 엄한 벌로 다스려 주시옵소서” “네 이놈! 백정놈이 양반행세를 한 죄로 맞아
죽었기로서니 그렇듯 마을 사람들을 괴롭히느냐? 네 몸이 보다시피 종사를 못 지어 집집마다 먹을 양식이 없지
않느냐? 그만하면 더 원한도 풀었을 것이니 어서 이곳을 떠나거라” 그러자 백정귀신은 원통한 듯이 한동안
목놓아 울더니 “사또, 그럼 마지막으로 소인의 소원을 들어 주시옵소서” “그렇다면 너의 마지막 소원이 무엇이냐?”
“소인은 제가 양반 행세를 하며 거닐던 저 들판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저 사천들에
산 다섯 개를 만들어 주시고 그 아래에 연못을 하나씩 만들어 주시면 소인을 비록 죽은 혼이나마 그곳에서
양반 행세를 하며 지낼 것이오며, 다시는 마을 사람들에게 행패를 부리지 않겠습니다. 그러하오니 소인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 주시옵소서” 백정귀신은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그 다음날 사또는 마을 사람들을 동원하여 백정귀신이 말한대로 사천들에다 다섯 개의 산을 만들고 산 아래에는
연못도 만들어 백정귀신의 원한을 풀어 주었다. 그로부터 오늘날까지 백정귀신이 나타나 행패 부리는 일은 없었으며,
종사도 차츰 잘되어 마을은 예전과 같이 평화스럽게 되었다.
<자료출처:사천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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