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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10.10 01:02

다솔사 대양루(多率寺 大陽樓 유형문화재 제83호)

다솔사는 흔이 곤양 다솔사로 많이 알려져왔으나 사실은 곤명면 용산리 산 86번지에 자리한 고찰(古刹)이다.

대양루대양루는 다솔사 안에 있는 큰 누각(樓閣)으로서,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이후 7년동안 우리 나라 대부분의 사찰이 그러했듯이 다솔사도 병화를 입고 폐허화 되었다.

그로부터 거의 100년이 지난 후인 숙종 12년(1686)에 승려들이 힘을 모아 10년 세월에 걸쳐 중창불사(重創佛事:절을 다시 이룩함)로 크게 중흥했다.

그러나 62년이 지난 후인 영조 24년(1748)에 큰 불로 말미암아 불행히도 재앙을 겪었다. 그리하여 같은 왕 34년(1758)에 여러 스님들이 또 합심하여 명부전(冥府殿)과 대양루 사왕문(四王門)을 중건했다.

다솔사의 가을 전경그런데 1914년 12월에 또 한번의 대화재로 모든 전각이 불타는 불운을 겪었으나, 이 때 유독 대양루만은 그 화를 면하여 오늘에 이른 것이다.

이 누각은 와지붕으로서, 높이가 13m나 되며 36개의 아름드리 큰 기둥이 무거운 몸체를 떠받치고 있다. 처음 건축당시에는 사왕문이라 하여 아래층은 출입문 구실을 하였으나 뒤에 건물 왼편에 돌계단이 새로 생기면서 지금은 칸막이로 창고와 기타 용도로 이용되고 있다.

1974년 2월 16일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후 건물이 오래되어 몸체가 비스듬이 기울기 시작했는데 1986년 8월 몸체와 지붕을 모두 수리하였다.

다솔사 극락전(多率寺 極樂殿 문화재 자료 제148호)

극락전곤명면 용산리 산 86번지 다솔사 경내에 있는 전각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 목조와가의 맞배집으로, 1985년 11월 14일 지방문화재 자료로 지정되었다.

다솔사의 연혁이 말해주듯 크게는 임진난 때의 병화 폐허화되고 그로부터 몇차례에 걸쳐 중건 하였다. 그러나 영조 24년(17480에는 3전(殿)과 3당(堂)이 불타는 재앙을 겼었다. 그러다가 1914년에 또 한번의 화재로 대양루를 제외한 모든 건물이 소실되자, 그 이듬해부터 3년간에 걸친 중창불사 끝에 현존한 것이 이 건물이다.

건축구조는 익공계(翼工系)에 속하는 양식이며, 익공계란 임진난 이후 우리 나라에서 성행하던 유형이다. 가구(가구)는 대개 지대석위에 마루가 없으며, 기둥 사이에 넛살문이 셋이고 주심포 짜임새에 서가래는 연목과 부연으로 되어 있다.

이 전각의 주존불(主尊佛:으뜸으로 모시는 부처)은 '아미타불'이다. 아미타라는 말은 산스크리트말의 아미타유스(amitayus), 혹은 아미타바(amitayha)에서 온 것이다. 아미타유스는 무한한 수명을 뜻하고, 아미타바는 무한한 광명을 뜻하므로 각각 무량수(無量壽) 무량광(無量光)으로 풀이된다. 뿐만 아니라 무한한 광명은 지혜를 가리킨다 하며 '무량수전' 또는 '미타전'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서 극락전은 정토종(淨土宗) 계통의 절에서 아미타불을 모시어 둔 법당이다.

이 법당에는 모든 중생을 제도(濟度)하겠다는 대원(大願)을 품은 부처 즉, 아미타불좌상을 모시고 있고, 그 양쪽에는 극락 정토에서 아미타불의 협시(協侍:좌우에서 가까이 모심)로서 부처의 교화를 돕는다는 관세음보살상을 모시고 있다.

다솔사 응진전(多率寺 應眞殿 문화재 자료 제149호)

응진전다솔사 경내에 있으며 정면 3칸, 측면 2칸, 목조와가의 맞배집이다. 이 전각도 앞서의 극락전과 같은 시기에 건립한 건물로서 건축구조도 역시 극락전과 동일하다.

응진전은 석가모니불 가섭(과거 7불의 여섯 번째 부처)과 아난다(아난다:석가의 10대 제자의 한사람)를 비롯한 16나한을 모신다. 나한전이라고도 일컬으며, 오백 나한을 전각 가득하게 모시기도 한다.

아라한(arhan)은 본래 범어(梵語:산스크리트어)로써 존경을 받을 만한 사람이라는 뜻 즉, 소승불교의 수행자 가운데 최고의 경지에 도달하여 온갖 번뇌를 끊고, 사제(네 가지가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리)의 이치를 밝히어 얻어서 세상 사람들의 존경을 받을 만한 공덕을 갖춘 성자를 말함이다. 또 열 가지 부처의 칭호 가운데에 하나이며, 생사를 이미 초월하여 배울만한 법도가 없게 된 자리의 부처를 말한다.

불전은 엄숙한 분위기가 감돌게 마련인데 나한전 만은 파격을 이루어 보는 이로 하여금 미소짓게 하는 수가 있다. 모셔진 각양 각색 저마다의 개성이 강한 특징이 있는 나한상의 모습 때문이다. 나한은 아라한의 약칭으로 산스크리트 아라한을 음역한 것이다. 응공(應供) 응진(應眞)의 뜻을 지녔다. "공양을 받을 만한 자격자", "진리에 응하여 남을 깨우치게 하는 자" 즉 성자를 아라한이라 부른다.


※ 극락전과 응진전 사진은 다솔사에서 제공받았습니다.

<자료출처:향토문화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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