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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화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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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포고등학교 총동창회 사업 창립자 정갑주 선생 “공덕비” 건립 가시화

  개교 61주년을 맞은 삼천포고등학교 총동창회 (회장 문정호)가 지난 4월16일 정기총회를 가진 자리에서 두가지의 큰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자리에서 문회장은 1만2천여 동문을 향해 호소성이 다분한 내용으로 “1만여 동문의 참여와 협조를 바라면서...”란 대회사에서 밝힌 두가지 큰 사업은 첫째 모교역사 알기 사업이다. 이를 통해 모교와 1만2천여 동문들의 정체성을 확립하기로 했다.
돌이켜 보면 이 고장에 중등교육과정이 없었던 그 시절 부유층 자녀들은 타지역으로 진학 하였으나 그렇지 못한 서민들의 자녀들에게 수학의 기회를 제공함과 아울러 지역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사학1호(1946년 6월20일)로 학교법인 보흥의숙으로 승인 받아 설립한 학교로 59회에 걸쳐 1만2천여 동문들을 배출시켜 국가와 지역사회 발전에 이바지 하였고 모교 설립과 발전과정에 큰 역할을 해 온 선각자들을 발굴해 동문과 시민들에게 귀감이 될 수 있도록 재조명 해 새로운 지역문화의 기틀을 만들고 동문들의 위상을 찾게 하자고 호소했다.
둘째는 총동창회 회관 건립을 추진한다. 이 사업은 후배 동문들이 갈망하는 사업으로 회관을 건립하여 기수별 사무실을 만들고 동문 선후배들이 자유롭게 드나들면서 정보교류와 화합의 자리가 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 자리에서 분야별 추진위원장을 위촉했다. 모교 역사 알기 추진위원장에 정삼조(제 21회, 교사, 시인), 총동창회관 건립 추진위원장에 원정부(제6회, 김해복음병원장) 동문을 위촉하고 사업 추진 첫걸음을 내디뎠다.
발의문에 따르면 모교는 그때 삼천포 읍민들의 성금으로 세워진 학교다 일찌기 이 고장에 중등학교가 없어 배우고자 해도 배울수 없었던 후학들의 딱한 사정을 익히 알던 이 고장 사람들이 인재양성만이 나라와 고장을 빛내는 일이라는 일념하에 성금을 모금하여 해방후 최초로 설립한 학교다.
그때 성금을 낸 사람들은 총376명이었고 금액은 248만6,300원이었다. 역사는 반드시 조명되어야 하고 이 사업으로 우리가 배운 학교가 어떤 의미에서 탄생하였으며 동문들이 해야 할 일이 분명해 질 것이다.
60여년의 역사 속에 담긴 애환과 스승들의 흔적을 찾아내 기록을 남김으로서 격동기의 변화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야 하는 당위성을 안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총동창회 명부”가 발간 되어야 하고 “모교 60년 약사”, 모교 설립의 주체이자 초대 교장이었던 “정갑주 선생”의 공덕비 등이 건립되어야 한다는 당위성을 부르짓고 있다.
또 총동창회관 건립이 발표되자 지난해 주관기인 28회 주관기 이성호 회장외 회원들이 회관건립 종자돈으로 1천만원을 쾌척하자 건립사업이 탄력을 받아 각계각층의 동문들이 앞다투어 성금을 기탁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그런데 이 두가지 사업이 가동되면서 동창회 측이 처음 착안한 “흉상” 설립을 재단측이 극구 반대 하자 창립자 후손들도 “흉상” 건립은 고사한다는 뜻을 밝히면서 사업이 표류했다. 또 건립 후보지를 교내냐 아니면 교외냐를 두고 한차례 갈등을 빚어 왔다.
그러나 재단측의 배려와 아량으로 후보지를 교내에 하기로 잠정 결정 되었다는 낭보가 지난 27일 전해졌다. 따라서 동문인 서정시인 박재삼 시비(詩碑)도 함께 건립 될 것으로 알려졌다.
창립자 정갑주 선생은 공덕비(功德碑), 박재삼 시인의 시비가 학교 중앙 양쪽에 나란히 세워지게 될 것이다.
이에따라 시민 이모(74세, 벌용동)씨는 “역시 교육자 다운 대국적인 아량이 돋보인다”며 “늦은 감은 있으나 좋은 일이 아닐수 없다”고 반가워 했고 총동창회측에서도 반기는 기색이 역력했다.
취재: 이동호 편집이사
4000news@naver.com

2011년 06월 30일 12시 07분 /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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