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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 신라를 거쳐 고려 때에
이르기까지 사천땅은 어느 곳에도 비길 수 없는 살기 좋은 곳이었다. 춘하추동 사계절에 알맞은 기후, 넓은
벌판에 기름진 옥토, 우거진 숲, 그리고 푸르른 바다. 들에는 백곡이 풍성하고, 바다에는 싱싱한 고기가
뛰며 산에서는 구미에 알맞은 산짐승이 서식 하니 어느 하나 생활에 부족함이 없고 이웃끼리는 서로가 도와주고
나누어 먹는 훈훈한 인정 넘치는 고장이었다.
이러한 때에 사천에 한 부호가 살았다. 가산이 넉넉하여 집안이 융성하니 벼슬자리를 하나 얻어야 되겠다는
욕심이 들어 어느 날 돈짐을 나귀등에 싣고 서울 정승댁을 찾았다. 정승에게 상납을 하고 벼슬 줄 것을 요청하니
기다리라는 분부다. 조석으로 청원한지 달이 가고 해가 가도 벼슬은 안주고 한결같이 기다리라는 말뿐이었다.
그동안 청지기에도 뇌물을 주고 정승에게도 거듭 상납을 하여온 것이 어느덧 3년이 되고 보니 수천 석 살림은
바닥이 나고 노비는 흩어졌으며, 가족들은 굶주림의 기아에서 헤매는 처지에 이르렀다.
부호는 벼슬은 안되고 그렇다고 집에 돌아갈 수도 없는 형편이라, 막다른 골목에 이판사판으로 정승에게 나가
"가산이 탕진되어 가족이 길거리에 헤매니 어리석은 욕심을 누구에게 탓하리요. 이제 나는 죽음 밖에 없으니
대감은 수수만대 부귀영화를 누립시오"하고 눈물이 비오듯 하였다. 정승은 그때에야 "죽음까지 가서야 되겠나"하면서
집에서 묵도록 하고 청지기를 불러 사천에 내려가 그 집 동태를 살펴 오도록 지시하였다. 청지기가 내려와
부호의 가정을 돌아보니 집은 허물어져 풀이 무성하고 자식들은 누더기 옷에 걸식하는 형편이라 이를 그대로
정승에게 고하였다.
정승은 비로소 부호에게 사천고을 수령을 제수 하였다. 원으로 부임한 부호는 옛 재산이 생각나서 목민관이라는
지위를 아예 잊고 탐학질에 몰두하여 백성의 재산 빼앗는 데만 일관하였다. 물불을 가리지 않는 원의 탐학질에
고을 백성들은 도저히 살아갈 수가 없어 어느 날 산성에서 군중대회를 열었다. 이 군중 모임에서 원을 짚동에
몰아 관아에서 쫓아내기로 결정한 것이다. 당시 제도로 원을 '짚동몰이'로 하여 경계 밖에 밀어내면 바로
파직이 되는 것이다.
이 광경을 아전이 헐레벌떡 동헌으로 달려와서 숨을 내 몰아쉬며 [아전] : "사또 큰일났소이다" [사또]
: "무엄하게 무슨 호들갑을 그리 떠느냐" [아전] : "지금 산성에는 수천 백성이 모여 사또를 [짚동몰이]를
하여 관아에서 내 쫓는다하며 곧 들어 닥친다 하옵니다." 사또는 아차 하였다. 자기가 생각해도 너무 심했던
것이다. 그러나 때는 늦어 엎질러진 물이다. 깊은 늪에 빠진 듯이 후회에 잠겼다가 최후의 단안을 구상했다.
"거 형방, 이방 없느냐?" "네 대령하였나이다" "지금 너희들은 곧바로 산성으로 가서 백성들에게 일러라.
내가 짚동몰이에 앞서 백성들 뜻에 따를 것이다. 그러니 백성들 대표를 동헌으로 모시고 오도록 하여라" 아전들은
급히 산성으로 달려 사또의 뜻을 전달하였다.
백성들은 사또가 스스로 물러간다 하니 굳이 짚동몰이를 할 필요가 없다하여 대표 몇이 원님과 대담하게 되었다.
원님은 말하였다. "나는 고을 원 한자리를 얻기 위하여 수천 석의 재산을 날렸다. 그리하여 잃었던 살림을
찾으려고 온갖 비리를 저질러가며 고을 백성의 피를 빨았다. 내 잘못을 내가 안다. 나는 이로써 물러가도
후회 없이 만족하다. 그러나 다음 부임하는 원도 위에 물이 맑지 않으니 탐학질을 할 것은 뻔하다. 나는
이제부터 백성을 위한 정사를 하려고 마음 먹었는데 물러가게 되니 자손에까지 오명을 남기게 되어 천추의 한이
되는 바다"하며 눈시울을 적시는 것이었다. 군중대표들이 듣고 보니 사또의 말이 옳은 것이다. 그리하여 의논
끝에 짚동몰이도 철회하고 유임할 것을 되려 간청하게 되었다.
이후 이 고을 원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오직 선정만을 베풀어 옛 풍요로움이 되돌아와 태평가를 구가하게 되었고
원님에 대한 원성은 씻은 듯이 사라지고 백성의 입에서는 송덕만이 노래되어 그 후손도 길이 번성하였다 한다.
<자료출처:사천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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