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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11.01 04:05

장사(壯士)바위

덕천강을 끼고 있는 곤명면 연향마을은 앞들의 넓은 옥토로 산물이 풍부하며 특히 청과물의 명산지로서 풍요로운 삶의 고장으로 인근의 부러움을 받고 있었으나, 지금은 진양호에 수몰되어 마을은 폐허가 되고 남은 20여호는 산간의 박토와 산지개간 등으로 겨우 연명하니 우리 시에서 가장 못사는 마을이 되고 있다. 이 마을이 생긴 아주 옛적에는 잘 살았다 하며 이웃끼리 서로 돕고 나누어 먹는 인정미 넘치는 평화로운 마을이었다 한다.

이 평화촌에 어느 날 몸은 두아람(二丈)이 되고 키는 팔척이 넘으며, 신발이 두 자나 되는 악령 같은 거구의 추물이 불쑥 나타나 동네사람을 모아 놓고 "나는 옥녀봉의 여신령이다. 내일부터 나에게 양식을 바치되 하루에 쌀 한 말, 닭 세 마리로 하고, 보름만에 소 한 마리씩을 바쳐야 한다. 만일 영을 어기면 마을을 쑥밭으로 만들 것이니라" 하면서 재 실력을 보라는 뜻으로 동구 앞 정자나무를 마치 풀뿌리 뽑듯 힘들이는 기색 없이 쑥 빼어 내동댕이치니 모두 공포에 질려 그에게 복종키로 하고 그날부터 그의 요구대로 매일 쌀 한 말, 닭 세 마리와 보름 간격으로 소 한 마리씩을 바쳤다. 이러한 억울함을 당한 지 3년째가 되자 마을은 폐허가 되고 사람들은 하루 세 끼를 두 끼로 낮추어도 감내할 수가 없었다.

이제는 이판 저판의 판국에 다 달아 동네에서는 공론 끝에 원님에게 하소연하였다. 원님은 사연을 듣고 나졸 수십 명을 보내 그 흉물을 잡아오도록 명령하였다. 그러나 이 여괴물의 앞에는 상대가 될 수 없었다. 한번 손을 휘두를 적마다 바람에 갈대 쓰러지듯 5~6명씩 나자빠지니 나졸들은 도망쳐 관아에 돌아와 사실을 원님께 고하니 원님도 두려운 생각이 들어 자신에게 화가 미칠까 염려하여 아예 손을 끊고 말았다.

이런 일이 있은 후부터 여괴물의 횡포는 더욱 심하여 분탕질을 하니 동민은 절망에 빠져 존망의 기로에서 운명만을 기다리는 처지에 놓였다. 이러한 곤경에 있을 때 한 도사가 지나면서 하는 말이 "너희들은 왜 당산신(堂山神)을 잊었느냐"고 하면서 크게 한숨쉬며 자취를 감추었다.

마을 사람들은 정신이 아찔함을 느꼈다. 실은 이 괴물에 받치는 공물 때문에 마을 수호신인 당산신의 제사까지도 잊은 지 오래이다. 동네에서는 크게 뉘우치고 깨달아 정성을 다하여 당산신에게 기도를 드리기 시작하였다. 비는데는 무쇠도 녹는다는 말이 있듯이 처음 당상신(堂上神)은 마을에서 푸대접한데 탐탁치 않게 여겼으나 며칠에 걸친 동민의 지성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는지라 드디어 당상신은 괴물 여장사의 출두를 명령하였다. 그러나 여괴물은 여기에 굴복은 고사하고 오히려 당산신을 일격에 박살코자 큰바위를 머리위에 치켜들고 용맹스럽게 당산신에 덤볐다. 당산신은 당초 좋게 꾸짖어 개과천선토록 하려 하였으나, 이 행동을 보고 말로서는 도저히 불가하다는 판단이 섰다. 그래서 당산신은 일성호령과 함께 주문을 외우니 이 어찌된 일인가? 날뛰던 여괴물은 어느새 바위를 머리에 앉은 채 화석이 되어 버렸다.

이런 일이 있은 후 마을은 옛처럼 평화와 풍요를 되찾고 알뜰살뜰 잘살게 되어 당산신의 숭배는 날로 깊어 수년 전까지도 당산제를 동민이 정성껏 지냈다 한다. 지금 그 장사바위는 여자가 바위를 이고 있는 형용과 험상궂은 모양이 그대로 있다. 연향이란 촌명은 불력으로 이 괴물을 퇴치시킨 데서 연유를 찾을 수 있고 지금 동네가 폐허되어 당산동제는 모시지 않지만 제단은 그대로 남아 있고, 가정에 어려운 일이 생겨 당산에 기도 드리면 효험을 본다 한다.

<자료출처:사천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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