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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명 완사에서 서쪽으로 가는
국도에 조그마한 고개가 있는데 이를 곤젖고개라 한다. 옛날에는 이 고개이름이 연젖고개였다 하는데 그에 얽힌
사연은 다음과 같다.
고려 말 연젖고개에 한 부자가 살았다. 그의 사람됨이 인색하고 모지므로 주민들의 원성이 대단했다. 이 사람이
친상을 당하자 여러 풍수지사를 불러들여 명당자리를 모색하던 중 한 도사(道士)가 나타나 유택을 정했는데
이름하여 유두출지(流頭出地)였다. 과연 명당자리였다.
성대히 장사를 치르고 삼우가 지나 도사가 떠나려해도 노자 한푼 안주며 하는 말이 그 땅이 명당이라면 영험이
나타날 것인즉 일년 후에 오면 사례하겠다는 것이었다. 말없이 총총히 떠났다가 1년 후에 돌아온 도사에게
부자는 아직 영험이 없었고, 또 산운이 돌아올 때까지 사례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하룻밤 쉬고 가자는 청도
거절하고 밥 한끼 대접도 없이 축출하고 말았다.
도사는 말없이 그 집을 나와서 연젖고개에서 자리를 마련하고 앉아서 그 고개를 넘나드는 사람에게 한 푼씩
돈을 주며 이 고개이름을 연젖고개가 아니고 곤젖고개라 불러달라고 부탁하면서 자기가 갖고 있던 백 냥 돈을
다 썼다고 한다. 뒤늦게 이일을 안 부자는 고개이름을 연젖고개로 돌리려고 갖은 애를 다 썼으나 이미 잃어버린
인심을 되찾을 수는 없었다. 끝내 곤젖고개(젖통이 골았으므로 젖이 나오지 않는 것을 말함)가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 뒤 이 부자는 재산도 탕진하고 사람도 망하여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로부터 백년이 지난 후 금성의 합천이씨가 이 터를 잡아 선영을 모시니 과연 명당인지라. 후손이 수백 호로
크게 번성하여 살고있다.
<자료출처:곤명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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