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천군 곤명면 땅에 덕천강을
끼고 우뚝 솟은 벼랑산이 있으니, 이름하여 옥녀봉이라 일컫고 그 앞 벌판을 완사라 일컫는 내력은 다음과
같다.
이 봉우리에 옥녀라는 낭자가 살고 있었다. 용모가 뛰어날 뿐 아니라 행실도 단정한데다 베를 짜는데도 능통했다.
그녀는 옥녀봉에서 건너편 한복산이란 봉우리에 실을 날아 그 실로 베를 곱게 짜서 덕천강 맑은 물에 깨끗이
씻어 완사 넓은 들에서 말려 인근 시장에 내다 팔아서 생계를 유지하였다. 이런 사실이 널리 퍼져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덕천강 상류에 사는 민도령이 우연히 이곳을 지나다가 옥녀의 아름다운 자태에 마음이 쏠려, 평생을 두고 사랑할
것을 맹세하면서 청혼을 하였다. 옥녀도 재기가 넘치고 씩씩한 민도령이 싫지는 않았으므로 결혼 수락 조건
하나를 내세웠다. 청운의 꿈인 과거에 합격한 연후에 청혼을 받아들인다는 것이었다. 민도령은 쾌히 승낙 하고
꼭 합격할 것을 굳게 맹세하였다. 도령은 밤낮으로 글읽기를 게을리 하지 않고 열심히 하여 마침내 과거 길에
오르게 되었다. 옥녀도 민도령의 재기와 약속을 굳게 믿었기에 좋은 소식 있기만을 기다리며 기쁜 마음으로
도령에게 줄 옷감을 짜고 있었다.
이 무렵 고을 사또 행차가 옥녀봉을 지나게 되었다. 실은 옥녀의 미모가 빼어나다는 소문을 듣고 그녀를 탐내어
일부러 행차한 길이었다. 그런데 옥녀가 이미 혼처를 정하고 낭군의 옷감을 짜고 있다는 말에 크게 노하여
행차를 더럽혔다는 명분으로 환도를 뽑아 베의 날줄을 모두 잘라 못쓰게 만들어 버렸다. 옥녀는 이 어처구니없는
일이 분하고 억울하기도 하려니와 장차 낭군을 볼 면목이 없었기에 사또를 호되게 나무란 뒤 덕천강에 몸을
날렸다. 사또는 예상치 못했던 사태에 경악하여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피를 토하고 죽었다. 한편 과거에 장원급제하여
기쁜 소식을 옥녀에게 알리려고 단숨에 달려온 민도령은 이런 처참한 사태를 목격하고 일생을 해로하자고 맹세하던
옥녀가 없음에 세상 살 뜻을 잃고 옥녀를 부르며 강물에 빠져 죽었다. 이 일이 있은 후부터 이 벼랑밑을
지나는 혼인행차는 어김없이 화를 당하였으므로 신행 길은 멀리 우회하여서 다녔다고 한다.
주민들은 옥녀의 넋이 어린 이 봉우리를 옥녀봉이라 이름하고 앞 벌판을 옥녀가 비단을 씻고 널었다하여 씻을
완(浣), 비단 사(沙)자로 하여 완사라 부르고 있다. 상봉에는 옹달샘이 있는데 옥녀가 식수와 베짜는 용수로
썼다 한다. 옥녀봉 밑은 실을 날던 곳이라 하여 아무리 강바람이 거세어도 이곳만은 바람기 없이 잔잔함으로
주민들은 옥녀의 혼이 지금도 서려 있다고 여긴다.
또한 한복산에는 실을 날던 돌기둥과 베틀자리가 있는데 그 자리에 구멍이 지금도 완연하게 있다. 베를 짜서
한복을 마련한다는 뜻에서 한복산이고, 산허리의 열두 골은 열두 폭 치마를 상징한 것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리고 덕천강의 옛날 교통수단인 완사, 금성의 나룻배는 천년이 넘도록 옥녀봉 밑 나루터에서 강폭을 오고가고
함이 베를 짜는 북이 오고가는 것이라고들 한다.
<자료출처:곤명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