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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11.27 23:31

배춘리(培春里)

◆본래 진주군의 축곡면의 지역으로서 예전에는 배가 들었으므로 배춘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신기동, 양동과 가차례면의 하동과 사천군 북면의 토촌동 일부를 병합하여 배춘리라 해서 사천군 축동면에 편입됨. 신기, 양동, 배춘, 동치, 원계, 길평 6개의 자연마을과 면사무소, 축동초등학교, 농협 등이 이곳으로 옮겨 면의 중심지이다.

◆가무작실 : 원동(院洞).

◆갈고개 : 배춘 북쪽에서 사천읍 두량리로 가는 고개. 개의 혈이라 함.

◆검은 구름이와 양개골 전설 : 축동면 배춘리 운계(검은 구름)와 양동(양개골)은 음양오행설의 음과 양으로서 한쪽마을이 흥하면 한쪽마을이 쇠한다는 말이 구전으로 전하고 있다. 이 두 마을은 동서로 서로 마주보고 있다.

◆누른골 : 신기와 배춘 사이에 있는 골짜기.

◆동치(東峙) : 배춘 서쪽에 있는 마을. 꿩이 움직이는 형국이라 함. 비행장의 소음으로 이주계획

◆뒤골 : 동치 뒤쪽에 있는 골짜기. 지금은 골프장에 편입되었음.

◆멘더레미 : 배춘 북쪽에 있는 골짜기.

◆배춘(培春) : 배춘리를 이름. 전국 지명에서 “배말(舟村, 舟里)” 등은 산촌의 뜻인 “뱃말”이 변한 지명으로 보나 이곳의 배춘리는 “뱃말” 과는 다르며, 십수교라는 교량이 바닷물이 열물이 되면 이 교량까지 바닷물이 든다는 곳으로서 배가 드나들었던 곳이다.

◆번답 : 동치 서남쪽에 있는 들.

◆복두정터 : 사천읍 구암리와 배춘 경계 작은 산 위에 있는 복두정의 터. 고려 때 무인들의 궁술연마장으로서 아홉 사람의 무사가 배출되어 어사화를 받았으므로 사화대(賜花臺)라 함. 1950년 6.25사변 때 배춘, 토촌, 신기 등 세 마을 부녀자들이 이곳에 모여 피난하는데, 마을 남자들이 호위하여 이틀 동안 밤새워 보호하던 중 9월 25일 연합군이 북진함에 따라 집으로 돌아왔다 하며, 마침 그날이 추석이었다.

◆섬들 : 동치 남쪽에 있는 논. 옛날에는 숲이었으나 개간하여 논이 되었다 함.

◆성지골 : 양동 동쪽 사천읍과의 경계에 있는 골짜기.

◆신기 : 새터, 배춘 북동쪽에 새로 생긴 마을.

◆십수교(十水橋) : 열물다리, 열무다리, 동치 남쪽에 있는 다리. 바닷물이 열물이 되면(물이 많이 들면) 이 곳까지 화물배가 들어와서 하역작업을 했던 곳.

◆아랫땀 : 배춘 아래쪽에 있는 마을.

◆안골 : 신기동남쪽 안에 있는 골짜기.

◆양동(良洞) : 신기 북쪽 산 너머에 있는 마을. 일명 양개골이라고 함.

◆운계(雲溪) : 원동 남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

◆원동(院洞) : 가무작살. 운계 서쪽에 있는 마을. 원집이 있었다 함.

◆재마당 : 원동과 운계 사이에 있는 터.

◆재마당 : 원동과 운계 사이에 있는 터. 타작마당 있었음.

◆짓칫골 : 신기 뒤쪽에 있는 골짜기. 작은 암자가 있음.

◆참새미 : 짓칫골 중턱에 있는 샘.

◆핏다리 : 원동 북쪽에 난리 때 피를 많이 흘린 곳이라 함. 길이 약 10m.

◆한골도랑 : 진주시 정촌면에서 흘러 내려오는 내. 한골에서 흘러내림.

◆허에기모팅이 : 양동과 멘더레미 사이에 있는 모퉁이. 도둑이 많았다 함.



<자료출처:사천지명지>

배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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