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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11.27 23:45

죽천리(竹川里)

◆본래 사천군 상서면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용두, 초전동 일부와 중남면의 연포동 일부를 병합하여 죽천리라 해서 읍서(사남)면에 편입됨. 행정동으로 죽천, 용두, 상죽 3개동이 있음.

◆기덕비 : 죽포 최공기덕비(崔公記德碑)가 진삼국도변에 있음.

◆당병소 : 용두 서쪽에 용현면 연호와 접한 곳에 있으며 선진리성 전투에서 많은 명나라 군사가 물에 빠져 죽었다 함.

◆모래등 : 용두앞들을 말하며 죽천천의 모래가 퇴적되어 이룬 들임.

◆병둔과 당병소(兵屯과 唐兵沼) : 병둔마을은 사남면에 있는데 임진왜란 때 명나라 동정군의 중로군을 지휘하던 동일원 제독이 선진 왜성의 왜군과 싸우기 위해 진격하여 진을 쳤던 곳이다. 명나라 군사가 왜성의 도진의홍군에게 밀려 달아날 때 밤에 지리를 잘 몰라 사남면 죽천마을 하류에 있는 큰 소에 밀려들어 빠져 죽었으므로 그 뒤로 이 소를 당병소<唐兵沼>라 불렀다.※ 일본 식민지대의 말엽에 경상남도지사에 일본사람 하시모리사다가 부임해 왔다. 그는 초도순시 때 느닷없이 사천의 병둔 마을을 둘러보고 집집마다 따뜻이 인사를 하고 진주하씨(晉州河氏)들을 찾아서는 더욱 친절을 베풀고 이야기하기를 자기의 선조가 진주하씨인데 임진왜란 때 이 마을에 살았었고, 도진의홍(島津義弘)에 의해 포로가 되어 일본으로 끌려와 통역일을 주관하게 되었고 일본의 녹아도(鹿兒島)에서 살고 있다고 하였다. 일본의 명치유신 때 통역주관을 한다 하여 사사(士師)라는 일본성(日本姓)을 받았는데 옛 성이 그리워 발음을 ‘하시’로 하고 있다는 구전이 있다.

◆상죽 : 병둔 서쪽에 길게 진삼국도변에 있는 마을. 이곳에는 초등학교 사남파출소, 사남농협, 중대본부가 있는 지역.

◆수양재(首陽齋) : 용두마을에서 용현면 신기마을로 넘어가는 고개에 있는 해주 오씨의 재실임.

◆용두(龍頭) : 죽천천 건너 마을로서 동쪽의 산이 용의 머리와 같다하여 붙여진 지명.

◆유적비 : 죽암 최공유적비(崔公遺蹟碑)가 죽천재 입구에 있음.

◆죽천 : 대내라고도 함. 대밭과 개천이 좋아서 지어진 지명이다.

◆죽천재(竹川齋) : 학교가 있기 전에 죽천재에서 사람들을 모아서 강의를 하고 사남사립학교의 탄생으로 없어졌다. 지방의 유지들이 힘을 합하여 복원을 하여 죽천 아랫땀에 있으며 노인당으로 활용하고 있다. 죽천재의 마지막 훈장이셨던 고죽 오석선씨는 사남사립학교 초대 훈장으로 저서로는 유금산(游錦山)을 남겼다.



<자료출처:사천지명지>

죽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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