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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09.21 00:55

성내리(城內里)

◆본래 곤양군 동부면의 지역이며, 조선 세종12년(1430)에 평지식 곤양읍성은 축조(높이 3.6m, 길이 1,140m) 하였는데 성안에는 삼동(三洞), 수동(水洞), 2개 마을이 있으며 성내리라 한다. 동문은 송정마을 전화통신공사 기계실 뒤편에 있었고, 남문외리는 남문밖이라는 뜻으로 남문은 1005호선의 삼동과 남문외리 경계지점에 있었고, 북문대(비몽대를 북문내라고 함)라는 지명으로 보아 북문은 현재 곤양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 가는 다리 진입부분에 있었고, 서문은 1005호선의 수동과 후전의 경계지점에 있었다고 한다.

◆객사터 : 성내 북쪽에 있는 객사터. 지금의 곤양초등학교 자리가 됨.

◆곤양읍성 : <곤양읍성>

◆꿀새미 : 지금의 곤양 파출소와 면사무소 입구 왼편에 네모의 샘이 있었는데 옛날에는 두레박으로 물을 길러 먹던 때라 부녀자 한 사람이 물을 길다가 두레박을 빠뜨려 건지려고 갈퀴로 두레박을 건지는데, 그 갈퀴에 사람의 해골이 걸려와 혼비백산이 되었는데 알고 보니 그 샘물터가 대명지라 그런 일이 있고 난 후 샘은 폐정이 되고 지금 터만 남아 있다.

◆낙홍정 : 옛 활터.

◆당산 : 성내 동쪽에 있는 산.

◆북문교 : 수동 마을 북쪽에 있는 다리. 읍성의 북문쪽에 있는 다리로서 솔골로 이어지며 곤양고등학교의 통할로이기도 함.

◆비봉천(飛鳳川) : 성내 북쪽에 있는 내.

◆비자나무 : 곤양 면사무소 앞에 있는데 약 3m되는 2개의 나무로 천연기념물 제287호로 지정됨. <비자나무>

◆수동(水洞) : 말 그대로 물의 동네라는 뜻이다. 물통골이라고도 하며, 골짜기를 따라 마을이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물이 흘러 지나는 뜻인 물통골이라 할 만큼 평소에는 많은 물이 흐르지는 않으며 많은 비가 올 때나 장마철에만 물이 쏠려 흐른다. 풍수지리의 측면에서 곤양이 힘차게 항해하는 배 모양이어서 여기에 관련된 지명이 아닌가 한다.

◆안골목 : 성내 남쪽에 있는 길. 동서로 통함.

◆잣밭 : 현 면사무로 뒤편의 산. 잣나무가 많아서 지어진 이름. 성안임.

◆적벽(赤壁) : 성내 북쪽에 있는 벼랑, 바위에 적벽(赤壁)이라 크게 새겨져 있다.

◆짐대거리 : 성내리에 있는 마을의 옛이름이며, 곤양은 풍수지리적으로 바다를 힘차게 항해하고 있는 배의 형국(形局)이라고 한다. 배가 항해하는 데는 바람이 필요하며, 바람을 이용하는 돛이 필요하다. 돛은 돛대가 있어야 한다. 지금 곤양초등학교 서쪽 동네의 거리를 짐대거리(=돛대거리)라 하는데 일제 초기까지 이 짐대거리에 돛대를 세워놓고 항상 돛을 달았다고 한다. 그리고 성내리 일대에는 배에 쓰이는 용어들이 지명으로 불리어지는 곳이 많다. 기미년 3.1만세운동 이후에 이 거리의 돛대를 꺾어 버리고, 잘 달리던 배도 양 조각으로 쪼개어 버렸다고 한다. 송전 금용교에서 곤양초등학교 도로를 개설함으로써 보기 좋게 한 칼로 배를 갈라버렸다. 해방직후에 이 거리에 돛대를 세우고 돛을 달았다가 6.25이후에 흐지부지 되었다고 한다. 현재는 가로 세로로 시원하게 뚫려 있는 소방도로는 풍수지리적으로 볼 때 달리는 배를 박살내 놓고 있는 셈이다. 곤양의 도시계획은 기능적 실용성과 편의라는 현대적 판단과 심정적 아름다움과 기운의 운행이라는 전통적 시각 사이에 간격이 너무 커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쇳물의 지기를 누르고, 돛대가 꺾이고, 배는 산산조각이 나있는 형국이 현재의 곤양의 형국이다. 만군을 호령할 천자들이 어떻게 출현할 것인지 궁금하기만 하다는 전설이 있다.

◆창안 : 성내 동쪽의 한 지명으로 이곳은 창과 기타 무기를 간수하는 무기고가 있었다하여 붙여진 지명.



<자료출처:사천지명지>

성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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