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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09.21 01:32

감곡리(甘谷里)-감곡/복상

◆감곡(甘谷) : 조선 7대 세조가 병을 고치려 강원도 양양 낙산사에 거동했을 대 근처 동천의 물을 마시고 '달다'고 칭찬해서 이 샘이 있는 마을을 '감돌골'이라 불려왔다고 한다. 그 곳이 지금의 양양읍 감곡리이다. '감골', '감실'의 감(甘)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보통 '달다'나 적실과의 '감'과 관계지어 이름 유래를 말하고들 있지만, 대개는 '큰마을', '중심마을'의 뜻에서 나온 것이다. 감곡은 이곳과 강원도 양양 외에도 충북 음성, 충남 논산, 경북 영주와 영일 등에 깔려있고, 감리는 창녕군 고암면에 있다. '골'은 더러 평지 마을에 붙기도 하나 '실'은 대개 골짜기 마을에 붙는다. 따라서 '감실' 이라고 하면 그 자체가 큰 골짜기를 뜻하지만 그런 곳에 위치한 마을 역시 같은 이름을 얻는다. 이런 과정에서 볼 때 감골, 감실은 감곡, 시동 등의 한자로도 옮겨갔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곳 지명의 유래를 말할 때 가난한 사람들이 이곳 깊은 산골에 들어와 비옥한 토지와 산지를 개간하여 감나무를 많이 심어 생계를 도모하였기 때문에 감실이라 했다는 것은 엉뚱한 지명 유래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감곡소류지(甘谷小溜池) : 감곡은 산수가 좋고 산림이 울창하다. 산자락 밑을 구불구불 감돌아 흐르고 있는 시냇물을 가두어 만든 세 곳의 저수지는 골 안 기름진 옥답의 젖줄이 되어 주고 있다. 골짜기를 따라 논들이 일구어져 있으며 몽리 면적만 해도 약 51ha(감곡 26.3 복상 24.7ha)정도 된다. 몽리(蒙利)란 물의 혜택을 입는다는 뜻이다. 소류지란 작은 저수지인 보를 말하는 것으로 관개용의 물을 하천이나 계곡물을 끌어들여 담아놓은 못을 가리킨다. 곧 논에 물을 대기 위하여 오목 들어간 산밑에 둑을 쌓고 흐르는 냇물을 막아두는 봇물이다. 1960년대에서 1970년대에 걸쳐 만들어진 이 세 곳의 소류지는 명경지수와 같은 맑은 물이 항상 넘실거리며 아래에 있는 많은 논들의 젖줄 구실을 하며 이중에 대아골 소류지가 가장 크다.

◆국시당산 : 감곡 동쪽에 수림이 울창한 산으로 태고적 해일이 일어났을 때, 산등성이까지 물이 찼다는 전설이 전하고 있다.

◆배나뭇골 : 감곡 동쪽에 있는 골짜기로 옛날부터 이곳에 돌배나무가 많이 있었다는 데서 유래된 지명이다.

◆불당골 : 감곡 남쪽에 있는 산으로 옛날에 이름 모를 절이 있었다 하여 불당골 또는 불곡산이라 하였다.

◆안산(案山) : 감곡 앞쪽에 솟아 있는 산마루를 안산이라 불러오고 있다. 옛날부터 이 산을 <안산>이라 한 것은 산의 형국이 풍수지리상 이른 바 안산에 해당하는 지상이기 때문이다. 안산이란 집터나 묏자리의 맞은 편에 있는 산을 말하는 것으로 청룡, 백호, 주산과 함께 풍수학상 4요소의 하나이며 여러 산이 중첩하여 있을 때에는 내안산, 외안사으로 구별한다. 부락이나 묘지에 안산이 있었듯이 주군도읍에도 주산과 안산이 있었다. 사천의 경우 옛 읍기가 풍정리 남쪽에 있을 때 주산은 현 부봉산이었고, 안산은 지금은 없어진 옥산이었다.(삼성항공 사원아파트 자리)

◆익사재(益四齋) : 복상부락에 있던 서재서당. 최춘암 유고에 기재돼 있으나 지금은 흔적이 없다.

◆참새밋골 : 감곡 어귀에 있는 조그만 마을, 맑은 샘이 있다는데서 붙여진 지명이다.

◆호랑이 춤추는 바우 : 감곡 서쪽 정치나무골 위에 있는 우람한 바위로 학촌에서 보면 봄이 춤을 추는 형상 같다 하여 호랑이 춤추는 바우라 일컫는다. 산골이 깊고 수림이 울창해 옛날에는 맹호출림하여 서산을 향하여 포효하는 일이 많았다고 전한다.


◆복상(伏象) : 대산 부락 앞 국도에서 왼편 산길 따라 속칭 도리산 모롱이를 지나면 양지바른 곳에 마을이 나타난다. 마을을 둘러 있는 윗산이 흡사 거대한 코끼리가 엎드려 있는 형국이라 하여 복상이라 이름지었다 한다.

◆수리골(守理谷) : 이치와 도리를 지킨다는 뜻의 수리골은 복상부락 북쪽에 있는 아담한 골짜기이다. 마을 안에는 수은 송헌창 선생을 추모하기 위해 후손들이 세운 영모재가 있으며, 이로 인해 수리재골이라고도 일컫는다. 수리재는 옛날에 송수은 선생이 한학문을 가르쳤던 곳으로 그 터에다가 재실(齋室)을 지어 인근 한학자들이 모여 제사를 지낸다. 마을 어귀에는 수은 처사 은진송공기적비가 1993년 후학들에 의해 세워졌다.

<자료출처:정동면지>

감곡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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