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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09.21 01:13

수청리(洙淸里)-수청

◆수청(洙淸) : 수청리를 구성하는 마을들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산자락의 동쪽에서 서향으로 웃땀, 가운데땀, 아래땀의 3개 순으로 이구산의 북향 비탈아래 연달아 자리하고 있다. 이것은 그 취락의 형태상 위치에 따라 그렇게 부르는 것이고, 본래는 신동, 독조동, 죽담동 등의 지명으로 불리었다. 그런데 ≪사천읍지≫에 의하면, 이구산 밑에는 두 동리가 있는데 하나는 성인촌, 또 하나는 성재동이라고 하였다. 이로 보아 지금의 웃땀지역이 성재동이고 가운데 땀인 독조동이 성인촌(성자동)에 해당 지역이 아닌가 추정된다. 그리고 죽담동이 지금의 아랫땀이다. 그러면 지금의 수청이란 땅이름은 언제부터 생겨난 것일까? 숙종 35년(1699)에 펴낸 ≪사천현 여지승람≫에 의하면 오늘날 수청이란 지명이 뚜렷하게 기록돼 있음을 볼 수가 있다. 이로 보아 본래는 성재동, 성인촌으로 나누어 부르다가 조선 중기 이후부터 수청(水淸)이란 음운이 수청(洙淸)으로 훈차된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 고장 산수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이구산과 사수이다. 옛날부터 '산이 있으니 이구산이요, 물이 있으니 사수라'고 하였다. 물론 연장 26km에 달하는 하천이 사천강이지만 여기에서의 사수는 이구산 밑을 흐르는 강을 말한다. 그래서 사수를 말할 때 수석형철(水石瀅澈) 하고, 감인모발(鑑人毛髮)하다는 표현이 생겨난 것이다. 이처럼 수청이란 지명은 거울처럼 사람의 머리카락도 물에 비칠 만큼 맑고도 맑은 사수가에 있는 마을이란 뜻이 담겨져 있다. 그런데 왜 '사청(泗淸)'이라 하지 않고 '수청(洙淸)'이라 하였을까? 그것은 앞에서도 언급햇듯이 <洙>와 <泗>는 동의어로 본 데서 비롯된다. 예컨대 사천 지역의 여러 지명 가운데 사수강을 중심으로 하여 남쪽에 있는 면을 사남면, 수남면(옛 삼천포 지역)이라 하였고, 강북에 있는 마을을 수북동(현 풍정리의 일부 지역)이라 한 것이 그것이다.

◆공동묘지 : 수청 남쪽 고개 너머 서낭당산 동쪽 비탈에 있는 묘지로 1939년 5월에 설치함.

◆바랑고개 : 수청 서쪽에 있는 고개. 바랑이란 배낭의 변한 말로써, 중들이 길 갈 때 등에 지는 큰 주머니인 바랑과 같은 형국이라 함. 이곳에는 고려말 우와 때 사천 출신의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 목인길(睦仁吉)이란 분의 묘소가 있는데 이를 호승예불형(胡僧禮佛形)이라고 하였다.

◆베락바구 : 수청 남쪽에 있는 바위.

◆부엉덤 : 수청 동쪽에 있는 바위.

◆상사바우 : 수청 동남쪽 골짜기 안에 있는 바위. 바위가 기둥 위에 얹혀서 지붕같이 나와 있고 밑은 절벽인데, 상사란 처녀총각이 정사(情死)했다고 전함. 옆에는 기우제단(祈雨祭壇)과 맑은 샘물이 있는데 그 물로 머리를 감고 소원성취를 빌었다고 한다.

◆새장터 : 서낭당 수청쪽의 지룡(支龍) 끝에 위치한 옛날 활터.

◆새터 : 수청 남쪽에 새로 된 마을.

◆서짓골(서재골, 書齋谷) : 현 수청마을 가운데땀에 서재서당이 있었다. 그래서 서짓골이라 일컬어 왔는데 마을 노인들의 말을 빌리면 못을 만들 때 기왓장과 인골 그리고 꼭지에 '천전'이라 새겨진 헝겊이 나왔다고 한다.

◆성지골, 성재동 : 수청마을 동남쪽에 위치한 골짜기이다. 옛날에 첨추공 최두남의 숙부인 진주정씨가 이 골짜기 중턱에 단을 쌓고 성심 기도하여 연생 6남 하였다는 고사가 전한다. 그 단 아래 영천이 있었다는데 지금도 맑은 시냇물이 흘러내린다.

◆이구산(泥丘山) : 면의 남쪽 하늘을 병풍처럼 드리운 산등성이가 동서로 쭉 뻗어 자리잡은 수청마을의 배경이 되는 산으로 해발 360m의 우람한 산이다. 이구산, 글자 그대로 중국 산동성에 공부자가 나신 성역에서 따온 산 이름이다. 이구란 산 이름은 본래 공자의 자호로서 산동성의 곡부현 동남에 있는 산으로 공자가 탄생한 곳이며 이를 이산이라고 하였다. 이와 함께 산동성의 추현은 공자의 도를 이은 맹자가 나신 곳으로 이 두지역은 성인이 태어난 신령한 성역이라 하여 옛날부터 우리나라 유학자들의 존앙의 대상이 되어 온 곳이기도 하다. 따라서 산동성의 성역에는 두 갈래의 강이 흐르는데, 하나는 수수, 또 하나는 사수라 하였다. 두 성인이 수수(洙水)나 사수(泗水)가에서 제자들에게 학문을 설교하였다는 연유에서 이를 수사지학(洙泗之學) 곧 공맹학을 뜻하기도 한다. 유학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한창 풍미할 때 산수의 유래가 성역과 닮은 우리 사천을 동방의 명지로서 심지어는 추로지향(鄒魯之鄕)이라고까지 일컬었던 것이다. 이로 인해 따온 것이 이구산이요, 사수강인 셈이다. 그렇다고 중국의 곡부나 추현의 성역을 찾음은 경치를 보려함이 아니라, 공맹의 덕을 우러러 사모함에서 일 것이다.

◆이세미골 : 수청 남쪽에 있는 골짜기.

◆작답(作畓)들 : 수청 앞에 있는 들. 강둑을 멀리 돌리고 만들었다 함.


<자료출처:정동면지>

수청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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