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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09.21 01:51

장산리(獐山里)-노천/대산

◆장산(獐山) : 1914년 4월 군면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장천동, 대산동, 배방동, 복상동 일부를 병합하여 장천동의 장(獐) 자와 대산동의 산(山) 자를 따서 장산리(獐山里)라 한다.

◆노천(魯川) : 문헌에 따르면 1912년 당시 정동면의 전신이던 동면(東面)에는 16개의 동이 있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장천동(獐川洞)이다. 오늘날 노천부락이다. 장천이란 지형의 모양새가 마치 노루의 목처럼 생겼다는 뜻에서 붙여진 땅이름이며 게다가 내가 흐르니 '노루내' 또는 '놀내'라고 일컬었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노천은 적어도 1910년대 후라 할 것이며 지금도 흔히 놀내라 일컬는다. 놀내에는 안놀내(안땀) 바깥놀내(큰땀)로 나누어져 있다.

◆노천교 : 주민부담과 군비보조금 60만환(당시 화폐단위)으로 1956년 4월에 착공하여 7년 후인 1962년에 준공한 교량이다.

◆용소산 : 큰땀 뒤에 있는 용머리처럼 생긴 산등성이 아래 깊은 소가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마을 회관 : 동민의 집회와 동리일을 집행하는 동회관은 옛날에는 집회소라는 이름의 한옥이 안땀과 큰땀 중간지점에 있었으나 낡아서 허물어 버리고 1946년 가을 다시 동사를 건립하였다. 이어 1973년 3월에는 새마을운동을 펼쳐 동사 내부의 구조를 개수하고 방송기기와 집기류 일체를 구비해 놓았다. 그러다가 1992년에는 본동 출신 김장하씨의 희사금으로 건평 50평(2층 콘크리트 슬라브 지붕) 규모의 현대식 마을회관을 건립하여 1층에는 이장의 집무실과 경로실이 각각 마련되었고, 2층은 주민들의 교육 및 회의실로 다목적으로 이용되고 있다
.

◆대산(垈山) : 대산이란 부락명은 본래 몽대(夢垈)에서 비롯되는데 지금도 흔히 그렇게 불리운다. 몽대란 땅이름은 무열공 주장군의 출생지로서 그가 태어날 때 그 부친 몽중에 용을 보았다는 뜻에서 이름을 '몽룡'이라 했는데, 이로 인해 뒤에 용꿈을 꾼 집터라 하여 몽대가 된 것이다. 그 후 어느 때인가 몽대의 후속 이름으로 꿈몽 대신 천금산의 메산을 취하여 '산자락의 집터'라는 뜻의 대산으로 이름이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땅이름은 정착성이 짙어 한번 정해지면 여간해서 잘 바뀌지 않는 속성이 있는 법인데, 몽대란 지명이 대산으로 바뀌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대산소류지(垈山小溜池) : 대산 부락 북쪽 천금산 기슭에 있는 저수지로 논에 물을 대기 위하여 오목 들어간 산밑에 둑을 쌓고 흐르는 시냇물을 막아주는 봇물이다. 1958년경에 만들어진 이 소류지는 둘레가 약 300m 정도 되는 소담한 저수지이다.

◆도리산 : 대산부락 동쪽 저자거리 옆에 있는 산등성이다.

◆독쇄골 : 천금산 북쪽 배방동 아래에 있는 골로 옛날에는 뱀(독사)이 많았다고 한다.

◆똥매등 : 배방동 옆에 둥글게 생긴 산등에 큰 바위가 있으며 전주이씨 묘지로 되어있다.

◆덕구개 : 대산에서 감곡리 복상으로 넘어가는 고개.

◆배방사지(排房寺址) : 대산부락 북서쪽 배방골에 있는 절터인데 신라 때부터 내려온 고찰로서 처음에는 노곡사(蘆谷寺)라 하였다. 고려 현종 순이 어릴 때 우거 하던 절로써 숱한 일화를 남겼다. 훗날 임금을 모신 절이라 하여 배왕사(陪王寺)라 했는데 근세에 와서 불타 없어졌다. 이 사실을 오래도록 간직하기 위해 수년 전 빗돌 하나를 세웠는데 비를 세웠다.

◆별모(別廟) : 구암 이정 선생을 향사(享祀) 하기 위해 건립한 신당으로 본래 사천읍 구암리의 구계서원에 모셔오다가 1868년(고종 5년) 대원군 집정 때 전국의 미사액서원(未賜額書院) 철폐령에 따라 서원이 훼철되자 그 후손들이 대산부락 중간(529번지)에 선생의 봉사당(奉祀堂)을 세워 정부인(貞夫人) 의령심씨와 함께 해마다 제향하고 있다.

◆뱅이골 : 대산소류지 뒤에 있는 골짜기. 지금은 단감을 많이 재배하고 있다.

◆비선덩이 : 대산부락 북동쪽에 있는 산. 밀양박씨 선산의 비가 서 있다.

◆소정들 : 대산부락(몽대) 바로 앞에 있는 20ha의 들판으로 1987년 10월 경지정리를 하였다.

◆쇠평들 : 대산부락 남쪽에 있는 들판으로 옛날에는 사철(砂鐵)이 많이 났다고 하여 철평(鐵平)들이라 한다. ◆저자거리 : 동쪽 이웃마을 복상을 경계로 옛날은 여기서 저자가 섯다고 하며 지금은 동화약방, 삼은교회, 장산휴게소 등이 있다.

◆중상골 : 배방사지 밑자락 대산소류지 옆에 있는 골짜기로 옛날에는 배방절의 중들이 죽으면 이곳에 화장하였다고 한다.

◆천금산(千金山) : 산아래로는 소정, 쇠평들과 장천이 내려다 보이는 산으로 구전에 따르면 산등성이에 커다란 바위를 용암(龍巖)이라 불렀는데, 어느 하루에 이룡이 나타나 사람을 해코저 하매 이 고장 출신 주몽룡이 활을 쏘아 맞히니 용이 아니고 대검이더라는 전설이 전한다. 그래서인지 무열공 주몽룡의 호가 용암이다.


<자료출처:정동면지>

장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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