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신문 | 봉화대(생활광고) | 사이버사천
2019. 09.21 00:55

고읍리(古邑里)-고읍/동계

◆고읍(古邑) : 고읍동과 동계동을 편입한 법정리동의 명칭으로서 그 유래는 문자 그대로 오랜 역사의 누적이 깔려 있는 읍치(邑治)의 중심이었던 까닭에서 따온 지명이다.

◆고랑들 : 마을에서 동서북으로 드넓게 펼쳐진 들녘을 말하는 것으로 더러는 고래들이라고도 하였다. 아마도 고래등처럼 크고 넓다는 뜻이 담겨 있는지 모르겠다.

◆굽은등 : 구분딩이라고 하는데, 웃말과 아랫말 중간 지접에 자리한 야트막한 구릉을 두고 일컫던 지명이다. 경지정리 때 없어졌다.

◆솟내 : 굽은등 앞에 있었던 못으로 옛날에는 병풍지라 했는데 이것 역시 경지정지로 없어졌다.

◆옥터 : 웃말 동쪽에 있는데 옛날 읍기가 고읍에 있을 때 죄인을 가두어 두는 옥사가 있었던 자리이다. 지금은 모두 논밭으로 변하여 옥터 또는 옥배미라 일컫는다.

◆웃말과 아랫말 : 취락의 구성상 그 방위에 따라 붙여진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웃말을 웃땀, 아랫말을 아랫땀이라고도 했는데 ∼땀의 뜻은 본래 연못 담에서 온 것으로 주로 평야계에 속한 지명이라 하겠다.

◆이팝나무 : 고읍리의 웃말과 아랫말 중간지점인 북쪽 들 가운데 서 있다. 본래는 풍수상에 지세의 결함을 보허(補虛)하기 위해 만든 조산이 있었으나 1970년대 경지정리로 조산은 없어지고 이팝나무 한 그루만 조금 높다란 부지에 서 있고 이곳의 배 모양의 형상이기 때문에 돛의 구실을 한 나무라고 한다. 수령 약 600년 가량되는 이 나무는 둘레 3.5m, 높이 10m 안팎으로 잎이 무성할 때는 약 107㎡ 내외의 그늘이 지며 꽃이 잘 피면 풍년이 들고 잘 안피게 되면 흉년 들었다는 속설이 있다. 주민들은 이 나무를 일컬어 '헌누더기나무'라고도 하는데 꽃이 만발 할 때쯤 멀리서 바라보면 그렇게 보인다는 것이다. 이 나무는 물푸레나무과의 교목으로 잎은 둥글고 넓은 타원형 혹은 둥근타원형으로 봄철에 빛이 희고 향기로운 꽃이 핀다. 한창 필 때에는 눈이 쌓인 듯 하는데, 그래서 주민들은 헌누더기나무라 했는지 모른다. 꽃진 뒤에 핵과가 열리며 정원수로도 많이 심는다. 현재 보호수로 지정되어 주민들의 아낌을 받고 있다. 옛날에는 당산제라 하여 해가 바뀌고 정월 대보름이 되면 당산제단 일대를 깨끗이 청소하고 황토를 펴고 이 나무에 솔가지를 꺾어 왼새끼에 매달아 금줄을 쳐 놓고 마을의 안녕과 평안 그리고 풍요를 기원하는 당산제를 지냈다고 한다.

◆조산 : 웃말과 아랫말 중간 지접에 있었던 인공의 산이었다. 곧 마을지세의 결합을 방비하거나 보충 혹은 변경할 수 있다는 논리에 기초한 풍수 비보로써 마을의 안정을 꾀하는 방책으로 인위적 조산을 말한다
.

◆동계(東溪) : 흔히 주민들 가운데서는 자신들이 살고 있는 지명을 호칭할 적에 정확하게 동계라 하지 않고 뎅기라 부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는 동녘의 동자를 뎅이라 그릇 발음한데 불과하다. 그러면 동계라는 지명은 언제부터 생겨난 것일까. 그 유래를 살펴 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세종대왕 연보≫ 세종 19년 (1437) 11월조에 의하면, "경상도의 함안현의 신역은 파수로 하고, 사천현의 신역은 동계로 고쳐 부르기로 하다"로 되어 있다. 이로 보아 약 560년 전부터 역이 설치되므로써 비로소 동계라는 지명이 생겨났지 않나 여겨진다. 그리고 역이 있으므로서 역촌이란 마을이 형성되었을 것이라 추정된다. 그런데 동계라는 지명은 그 입지 조건으로 보아 전혀 걸맞지 않은데도 왜 동계라 일컬었던 것일까. 다만 사천강의 한 물줄기가 옛날에는 이 마을 한가운데를 흘러내렸는데 마을 위 동쪽에 깊은 소택(沼澤)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로 미루어 동계의 <東>자는 떠오르는 해가 나무에 걸렸으니 곧 동녘이지만 크다는 뜻이 되겠고, 계자는 시내계와 동의어로 큰 물이 흐르는 시냇가에 있다는 뜻으로 지은 지명이 아닌가 싶다. 지금도 동계마을에는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있다.

◆선돌(立石) : 고읍과 동계1 마을로 들어가는 진입로 오른편 첫 머리에 <동계 마을> (1985. 6. 30)이라 새긴 표석이 있는데 그 옆에는 높이 1m쯤 되는 방형(方形) 빗돌이 또 서 있다. 주민들 말에 의하면 이 선돌은 옛날 동계역이 있을 때 하마비(下馬碑)로 세운 것이라며 본래는 현 위치에서 동쪽으로 약 200m쯤 되는 방형 빗돌이 또 서 있던 것을 1960년대 후반 동계 일대의 경지정리로 이 곳에다 옮겨 놓은 것이라 한다. 그런데 이 선돌이 주민들 말처럼 만약 하마비라면 비면에 <하마비> 또는 몇 자의 글이라도 새겨져 있어야 하는데 그냥 자연석을 조잡하게 쪼아 만든 선돌에 그 앞을 지나갈 때는 누구든지 말에서 내리라는 이를테면 '대소인원개하마(大小人員皆下馬)'라 새긴 돌비석을 말한다. 따라서 성현이나 상급관청, 또는 명사고관의 탄생지나 분묘 앞에 세워져 있음을 볼 때 그들 선열에 대한 경의의 뜻으로 하마 하는 것인데, 동계역 주위에는 그럴 만한 곳이 없다. 어떤 이는 동계역 북쪽편에 사천문묘가 보이기 때문이라 하지만 이것 역시 설득력이 없다. 왜냐하면 동계에는 이와 같은 선돌이 마을 주변에 두 개나 더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무슨 뜻으로 세웠던 것일까. 그 해답은 동계의 지세에서 찾을 수밖에 없는데, 그것은 고읍 땅과 함께 동계 역시 양기 풍수상 '행주형국'이기 때문이다. 행주형국이란, 사람과 물건을 가득 싣고 장차 떠나려고 하는 배의 형상을 의미한다. 곧 마을의 터를 '떠나가는 배'로 여기기 때문에 고읍과 동계는 모두 행주형인 것이다. 이 형국에는 키, 돛대, 닻, 배말뚝, 배사공을 구비하면 아주 좋은 것이지만 그 중의 하나만을 구비하여도 괜찮다고 한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으면 배가 뒤집히든지 표류할 염려가 있기 때문에 매우 불길하고 위험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행주형 형상의 마을은 배의 안정과 순항을 위한 여러 인위적 염승물(厭勝物)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동계 마을의 여러 개의 선돌을 돛대와 닻 그리고 배말둑의 역할을 했으리라 미루어 짐작된다.

<자료출처:정동면지>

고읍리

Copyright (c) 1999 사천신문 Co.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