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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11.28 01:06

봉계리(鳳溪里)

◆본래 곤양군 초량면의 지역으로서, 조선조 때 완사역에 딸린 봉계원이 있었으므로 원골 또는 봉계원, 봉계라 하였는데 일명 완사에서 15리의 거리에 있는 원이라 하여 십오리원(十五里院)이라고도 한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오천동을 병합하여 봉계리라 해서 사천군 곤명면에 편입되었다. 충무공 난중일기(亂中日記)에 백의종군(白衣從軍)으로 삼가(三嘉)에서 노량(露梁)쪽으로 행여(行旅)할 적에 수군패보(水軍敗報)를 들은 십오리원(十五里院)이란 곳이 오늘의 원전(院田)이다. 봉계리의 유래는 앞산의 봉알자리(飛鳳包卵)와 초량천(草梁川)의 내가 흐르고 있으므로 봉계로 명명(命名)된 것이다. 원전, 오저(俉苧) 2개 마을로 이루고 있다. 원전(院田)에서 마곡(磨谷)으로 넘나드는 산길은 옛날 옥종(玉鐘)에서 곤양으로 통하는 대로였다 한다. 산마을 길옆에 돌무덤이 수기(數朞) 산재되어 있는데 사당(寺黨)무덤이라 전해지고 있다. 옛날 사당(寺黨)패에서 행여사(行旅死)하면 죽은 곳의 가까운 산길 옆에 묻는 것이 그들의 버릇인데 이곳도 그 무덤이었다 하며 길손이 그곳을 지나면서 지금도 돌을 던져 그들 원귀(怨鬼)를 달래고 있고 고개 먼당에는 서낭당이 현존하고 있다. 하동, 곤양 방향의 갈림길이기도 하여 옛날에 삼거리로 호칭된 바도 있다. 1910년 한일합방이 되자 이곳에 헌병분견소가 설치되어 면내 우국지사(憂國之士)를 고문한 곳이기도 하며 그 자리에 지금은 곤명지서가 들어서 있다. 1930년 사설 광명학원(光明學院)이 설립되어 민족교육도장으로 각광을 받았는데 당시의 강사진은 후일 건국 시 정계와 학계의 쟁쟁한 인사들이었다. 1968년 경전선철도의 개통으로 다솔사역이 마을 앞에 설치되었으며 1979년 취락구조개선으로 25호의 농촌주택이 개량되었다. 면사무소가 송림에서 이곳으로 이전 되었다. 마을은 “안마을”과 “바깥마을”로 되어 있고 두 마을 중간에 희귀목인 입화목(立花木, 일명 사화목)이 150년의 연륜(年輪)을 가져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거레들 : 원전 남쪽에 있는 들.

◆게사들 : 원전 서쪽에 있는 들.

◆게사등 : 원전 동쪽에 있는 산.

◆다신사역 : 원전 서쪽에 있는 역. 다솔사역.

◆덕골 : 원전 북쪽에 있는 골짜기.

◆돌곳먼당 : 원전 동쪽에 있는 산.

◆두룸골 : 원전 남쪽에 있는 골짜기.

◆먹안 : 원전 남쪽에 있는 마을.

◆모시골 : 원전 남쪽에 있는 마을로 돌곳 원당 밑 마을 임.

◆못골 : 원전 동북쪽에 있는 골짜기. 못이 있음.

◆밭터들 : 원전 서남쪽에 있는 들. 밭을 개간하여 논을 만들었음.

◆봉알자리 : 원전 동쪽에 있는 산. 청주한씨(淸州韓氏)의 묘지로 비봉포란(飛鳳包卵)이라 하여 후손들의 성묘 때는 먼데서 망배만 한다.

◆사화목(蓑花木), 입화목(立花木) : 원전 중앙에 있는 나무로 둘레가 2m이다.

◆세양골 : 원전 서쪽에 있는 골짜기.

◆오저(俉苧) : 오저는 봉계리(鳳溪里)에 속한다. 초량천을 사이에 두고 오천 저동(苧洞)의 양 땀을 합한 것이
오저 부락이며 구한말 때 초량면사무소가 소재하고 있었다.

◆오천(俉川) : 뒷산이 봉황산(鳳凰山)이므로 봉(鳳)은 오동나무에 깃든다 하여 산에 오동나무를 심었다 하고 마을 앞에 초량천이 흐르고 있으므로 오천(俉川)이란 동명(洞名)이 된 것이다.

◆장군암 : 원전 서쪽에 있는 바위.

◆저동(苧洞) : 모시를 많이 재배하여 생산하는 마을. 옛날 모시(苧)가 많이 생산된 연유에서 나온 말이고 세종 때 곤남군으로 있을 적에 군의 공식 공물이 문헌에 있음을 볼 적에 이 마을 모시베(布)가 진상(進上)되었음을 추측된다.

◆전대보(田垈洑) : 오저 북쪽에 있는 보.



<자료출처:사천지명지>

봉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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