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신문 | 봉화대(생활광고) | 사이버사천
2022. 11.28 00:09

초량리(草粱里)

◆본래 곤양군 초량면의 지역으로서 새들 또는 초량이라 하여 초량면의 이름이 되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삼거리를 병합하여 초량리라 해서 사천군 곤명면에 편입되었다. 곤명의 서단(西端)이며 하동 북천과 면계(面界)를 이루어 “양달” “음달”로 구성되어 있다. 원래의 동명(洞名)은 “구시골” “손도(孫道)” “손량(孫良)”으로 불리어졌으니 “구시골”은 마을 형태가 “쇠죽그릇”을 닮았다 한데서 유래된 것이고 “손도”는 용산리에 있는 진양정씨 묘에 당시 상주(喪主)가 시묘(侍墓)살이를 하고 있었는데 손자가 조석식반을 6년간 나르는 내왕 길이었기에 후인이 길 이름을 손도라 부른 것이 동명(洞名)도 이에 따랐다 한다. 조선조 때 초량면의 소재지가 되었던 것을 연유하여 초량리로 부르게 이르렀다 한다. 마을 앞에는 7그루의 느티나무가 한곳에 모여 있어 하절의 짙은 그늘은 옛날 보행객이 쉬어 가는 곳으로 이름이 나 있고 지금도 마을 주민의 피서지로 유명하다. 양지 마을 뒷산에 “말무덤”이 있는데 옛날 장수가 죽자 애마(愛馬)도 함께 장사 지낸 곳이라 한다. 음달 마을 남쪽산 중턱에 수기의 자연석 석관은 옆으로 가로 질러 있어 고고학적 연구가치가 있는 곳이며 가야시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979년의 취락구조개선 때 10호의 주택이 개량되었고 동리 입구에는 고령토(高嶺土) 하치장이 있다.

◆가맷골 : 초량 남쪽에 있는 산. 모양이 가마처럼 생겼다 함.

◆각시골 : 각시덤 북쪽에 있는 골짜기.

◆각씨(신부)쏘(沼) : 먼 옛날 동쪽 어느 농가에 혈육이 없다가 한 여아가 태어났다. 점점 자라남에 그 용태(容態)가 아름다워 화용월태(花容月態) 그대로였다. 또 총명하고 재주있으니 부모는 장중보옥(掌中寶玉)같이 고이 기르면서 글을 가르치니 문일지십(聞一知十)이요, 일견즉해(一見卽解)의 수재였다. 그녀는 부모에게 효성이 지극한지라 항시 조석문안(朝夕問安)과 함께 침구 시중은 물론 공손함과 극진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고 드리는 음식에도 소홀함이 없이 정성을 다하였으니 가정은 언제나 화목하고 즐거움이 넘쳤다. 어느 날 아침 처녀가 밥을 짓는데 부엌에 짐승도 아니고 벌레도 아닌 조그마한 미물(微物)이 바닥에 앉아있거늘 자세히 살펴보니 복스러워 보이는 지라 밥을 주니 날름날름 받아먹는지라 귀엽기 한량없었다. 이날부터 밥을 지을 때 마다 그 미물이 나타나므로 밥을 주면 받아먹는 등 세월이 가는 동안 어느 듯 정이 들어 미물은 처녀방에서 함께 놀기도 하고 잠자기도 하여 유일한 동무가 되어 버렸다. 어느 듯 세월은 흘러서 처녀나이 이팔(二八)이 넘으니 막 피려는 모란꽃 봉우리처럼 우아하고 아름다운 자태는 보는 이의 눈을 황홀하게 만들었고 금상첨화(錦上添花)란 말처럼 그의 고운 마음씨와 효성의 지극히 남들이 부러워하는 정도에 이르렀으니 원근에서 청혼함이 가히 문정성시를 이룰 지경이었다. 마침내 하동쪽에서 어느 대가집 아들과 혼사가 성립되어 대례를 치루게 되었다. 대례를 치루고 난 후 좋은 날짜를 잡아 시집을 가는데 시가에서 보내온 혼물과 시댁에 드리는 예물을 갖추어 노비를 거느리고 신행길에 오르게 되었다. 떠날 무렵 신부가 무심코 방에서 나오려고 하자 정들었던 그 미물이 불쑥 나타나 애원하듯 호소하듯 몸짓을 하는지라 신부도 헤어지기 싫어하는 그 미물을 가엾이 여겨 가마 속에 담아 함께 가기로 하였다. 한편 가마의 교군(轎軍)꾼은 상전미인(上典美人)을 모시고 가는 길이라 술을 얼근히 마시고 흥겨워 노래도 부르며 길을 재촉하여 갔다. 지금의 초량마을 건너편 덤 밑을 지나가게 되는데 옛날에는 길도 좁고 바위 길이고 아래는 깊이를 알 수 없을 만큼의 깊은 쏘였다 한다. 가마꾼은 어쩌다 아차 하는 순간에 그만 실족하여 덤길 밑 흐르는 쏘에 빠지니 가마마저 곤두박질하게 되고 뒤 따라 오던 의농(衣籠)을 짊어진 노비와 함께 물에 빠지고 말았다. 그런데 교군꾼과 노비는 힘 있는 장정이라 제 살기가 바빠서 가마를 탄 아씨는 건질 엄두도 하지 않고 그대로 둔 채 헤엄쳐 나왔다. 이때 가마 속에 함께 있던 미물이 은인인 신부를 살리기 위하여 뒷산 봉우리에 뛰어올라 “모두(모든 사람들아) 나의 은인을 살려 주십시오”하는 뜻에서 개구를 온 몸의 정력을 다하여 몇 백번 외치건만 도와 주는 이 없어 끝내 시집가는 아씨는 구출되지 못한 채 숨을 거두었다 한다. 이때 이 미물도 자신의 정기가 빠지자 죽어 그 자리에 화석(化石)이 되어 그대로 앉아 버렸다 하여 이 미물이 바로 개구리의 시조(始祖)란다. 그 후손인 개구리들이 “개굴개굴” 만을 부르는 것은 그 선조의 넋을 받아 개구하던 것이 오랜 세월을 거치는 동안 말소리가 변했다는 것이다. 화석(化石)이 된 바위를 “개구바위”라 하며 현존하고 있는 신부가 빠져 죽었던 곳을 “각시듬” 벼랑밑 쏘를 “각시쏘”라 부르고 쏘에 빠진 의농(衣籠)도 억울한 주인의 죽음에 갈곳이 없어져 화석(化石)이 되어 빠진 그 자리에 있으니 이름 하여 “농바위”라고 부르고 비명으로 간 억울한 이 원혼을 달래는 제사를 오랫동안 지내왔다고 전해지고 있다.

◆개구리 바우 : 초량 서쪽에 있는 바위. 개구리처럼 생겼다 함.

◆농바구 : 각시덤 밑에 있는 바위. 농처럼 생겼다 함.

◆다리비등 : 초량 북쪽에 있는 산. 다리비처럼 생겼다 함.

◆덤밑 : 초량 남쪽에 있는 너설.

◆매화징이 : 봉암산 밑에 있는 들.

◆목넘 : 초량 서쪽에 있는 고개. 세양골로 넘어감.

◆봉바구 : 봉암산 위에 있는 바위. 봉황이 살았다 함.

◆봉암산 : 초량 서쪽에 있는 산.

◆서지갓 : 초량 북쪽에 있는 산. 서재가 있었다 함.

◆양달 : 초량 서쪽에 있는 마을.

◆음달 : 봉암마을.

◆조래등 : 초량 남쪽에 있는 등성이. 모양이 조래(조리)처럼 생겼다 함.

◆주게배미 : 초량 서쪽에 있는 논으로 모양이 주게(주걱)처럼 생겼다 함.

◆중생엥골 : 봉암 동쪽에 있는 골짜기.

◆햇갓 : 봉암산 위쪽에 있는 산. 마을에서 소나무를 길러 횃불의 재료로 썼다 함.



<자료출처:사천지명지>

초량리

Copyright (c) 1999 사천신문 Co.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