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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11.28 01:09

본촌리(本村里)

◆본래 곤양군 곤명면의 지역으로서 곤명면사무소가 있었으므로 본촌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본촌리라 해서 사천군 곤명면에 편입되었다. 곤명면의 동북단에 위치하여 “본땀”과 양월의 2개 마을로 구성되고 소재지에서 8km거리에 있다. 덕천강을 경계하여 북으로 진주시 수곡면과 접하고 있으며 고려 태조 23년에 곤명이라 호칭되어 지금의 수곡면 광명촌 일대가 원당(願堂)이라 하고 이 일대가 곤명의 일부였다고 한다. 고려사지리지, 세종실록지리지, 동국여지승람 등 문헌에 곤명현의 설치 기록이 있고 지금도 “돌 호박”이라는 주초석과 미륵석불, 그리고 옥터 등 유지(遺地)가 이곳에 그대로 전하고 있었으나 진양호 확장으로 발굴을 하였다. 전설에는 미륵석불들이 동산 모퉁이와 불당골 앞에 각기 수호신으로 있어 현리들이 삭망기도(朔望祈禱)를 빠짐없이 하였다 하며 그 후 폐현이 되자 서로가 수호를 못다한 책임을 전가하다가 두 석상이 싸워 하나는 어깨가 떨어지고 하나는 목이 부러졌다 하며 그 동강난 석불이 현존하고 있다. 마을 뒤 서재골과 상사바위는 전설이 얽힌 곳이고 당상봉은 세세년년 동민이 산제를 지내던 곳이다. 고려 때 지어진 대흥사는 희미한 유적뿐이고 옆 골짜기에 대흥암자가 있으며 월아봉은 운중반월(雲中半月)이라는 명지이다. 구한말 때 지금의 곤명면이 4개면으로 있을 적에 곤명면의 소재지였고 1914년 4개면이 곤명면으로 통합됨과 동시에 면사무소가 송림으로 옮겨졌는데 본시 현 면의 소재지였다는 뜻에서 본촌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양월(陽月)은 양달 마을이었던 것이 한자로 표기로 된 것이고 일명 “장자터”라 함은 부자가 많이 살았다는 뜻에서 생긴 동명이다. 동쪽 강변에 큰 느티나무가 강바닥에 묻혀 있는데 몇 백년은 족히 되나 아직 침향(沈香)이 아니 되어 그대로 묻어두고 있으니 침향은 천년이 넘어야 고가의 주사(主砂)가 된다 한다. 1970년까지 수곡과의 교통은 덕천강의 도선이었다. 일천년을 두고 애환을 실어 나르던 유서 깊은 나룻배가 덕천교의 개통으로 시정과 풍류 담긴 정경은 찾을 길 없고 옛 나루터 위의 깎은 듯한 높은 벼랑과 깊이를 모르는 검푸른 소는 접근을 두려워하는 신비함을 간직하고 있다. 특산물로는 소채(蔬菜), 청과가 이름난 물품이다.

◆가는골 : 본촌 북서쪽 가늘고 긴 골짜기에 있는 마을.

◆곤명들 : 본촌들.

◆공덕곡(公德谷), 공도실 : 본촌 서쪽에 있는 골짜기.

◆당골 : 본촌 서쪽에 있는 마을. 무당이 많이 살았다 함.

◆대흥사(大興寺) : 양월 남서쪽에 있는 절.

◆두개골 : 본촌 서쪽에 있는 골짜기.

◆띠밭골 : 본촌 서쪽에 있는 골짜기.

◆마당골 : 본촌 서쪽에 있는 골짜기.

◆문동곡(門童谷), 문동골 : 본촌 서쪽에 있는 골짜기.

◆밧들 : 본촌 동쪽에 있는 들.

◆부체정 : 본촌 동쪽 300m지점에 있는 미륵 발굴하였음. 미완성 불상임.

◆불당곡(佛堂谷), 불당골 : 양월 서쪽에 있는 골짜기. 절이 있었다 함.

◆삼밭골 : 본촌 서쪽에 있는 골짜기로서 마을을 이루고 있음.

◆상사바위 : <상사바위에 관한 전설>

◆서짓골 : 본촌 북쪽에 있는 골짜기 서당이 있었다.

◆양달 : 본촌 서쪽에 있는 마을.

◆양월 : 본촌 남쪽에 있는 마을.

◆오룡정(五龍亭) : 본촌 동쪽에 있는 오룡장 터.

◆원당골 : 본촌 남쪽에 있는 골짜기. 원당(願堂)이 있었다 함.

◆음달 : 양월 동쪽에 있는 마을.

◆장자터 : 본촌리에 있는 마을. 장자가 살았다 함.

◆장터거리 : 옛날의 장터로서 본촌 남쪽에 있었다. 지금은 논.

◆정지골 : 양월 동쪽에 있는 골짜기.



<자료출처:사천지명지>

본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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