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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11.27 23:45

금성리(金城里)

◆본래 곤양군 곤명면의 지역으로서 금성 밑이 되므로 금성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금성리라 해서 사천군 곤명면에 편입됨. 금성, 장신 2마을로 이루고 있다. 금성교(金城橋)를 사이에 두고 완사평야 북쪽에 위치하여 면소재지에서 5km 거리이다. 신라가 가락국을 귀속 시킨 후 신라국사(新羅國師)가 이곳을 둘러보니 대강(大江)이 주위를 싸고 절벽과 험산에 둘리어 가히 천혜의 요쇄지(要塞地)였으므로 축성(築城)하였으니 성명이 금성(金城)이고 동명(洞名)이 이에 따라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성지(城址)는 가야시대의 것으로 지금도 있으며 통일시라 시대 금능현을 두었던 곳이라 하며 발견된 유물로는 신라시대의 삼정 기와와 금동불이 출토되었다. 연강정(縯江亭)은 임진왜란 뒤 건립된 학당으로 많은 유사(儒士)를 배출하였으며 또한 명사(名士)의 시론장(時論場)으로도 오랜 전통을 갖고 있어 문화재로 지정하여 줄 것을 당국에 건의한 바 있으나 성사는 되지 않고 있다. 또 이곳에 영사재(永思齎)가 있는데 300년 전에 앞들에 건립되었다가 훼손되고 180여년 전에 재건된 것이니 현 위치로 이건한 것이라 한다. 덕천강(德川江)의 도선(渡船)은 촌락이 생긴 신라 때부터 나룻배가 있었다고 볼 수 있으며 이천년의 영고성쇠(榮枯盛衰)를 간직하면서 유일한 교통수단으로 족손하다가 1956년 전동재(全洞財)를 투입하고 겸하여 한형구 군수와 김용순 의원의 도움으로 숙원이던 조교(釣橋)를 가설한 바 있으나 1967년의 대홍수로 유실되어 다시 나룻배로 되돌아갔다가 1974년 당시 국회의원 최세경의 후원으로 철근 콘크리트교(橋)가 폭 4.2m, 전장 166m의 교량이 준공되어 대평면과도 통행이 소통되어 교통이 매우 좋아 주민의 생활 향상에 큰 도움을 하고 있다. 진양호의 확장으로 새로 교량이 가설되어 더욱 교통이 편리하다. 곤명을 중심으로 한 지역에서 3.1독립만세의 첫 봉화를 올린 곳이 금성이고 또한 금성리가(金城里歌)를 제정하여 금성리민(金城里民)이라는 전통과 긍지를 간직하고 있는 마을이기도 하다. 참고로 금성리가(金城里歌)를 옮겨 보면 이영수 · 이준호작사, 김정흥 작곡으로 되었다. 이 마을은 1975년부터 동계에 하우스 재배를 실시하여 소득이 크게 향상된 곳이며 우수품질전통을 세우려고 상자에 “금성”표지를 넣어 출하하고 있으며 작목반도 편성하여 고소득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러나 진양호의 확장으로 들판은 모두 편입되었다.

◆금성리토성지 : <금성리토성지>

◆넘비럭 : 금성 앞에 있는 바위. 들판 길목에 서 있는데 높이 17m.

◆당산봉 : 금성북쪽에 있는 산.

◆덕천강(德川江) : 덕천강(德川江)없이 곤명이 있을 수 없는 곤명의 젖줄인 강은 이름 그대로 덕수러운 큰 시내이다. 국가 직할(直轄) 하천으로서 지리산에서 떨어진 빗방울이 흐름이 시작이 되어 옥수(玉水)처럼 맑은 사시장류(四時長流)하여 평야의 풍토를 안겨 주어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다. 이 강물은 경신년(庚申年 : 1902)과 병자년(丙子年 : 1936)의 대홍수로 많은 인명과 재산을 휩쓸어 가기도 하였다. 본촌(本村)의 “보(洑)안 덤” 금성(金城)의 “오룡(五龍)덤”완사의 “옥녀덤”은 다 같이 기암절벽을 이루고 있어 사계절에 따른 기화요초(琪花瑤草) 그리고 바위 사이사이에서 고되게 자란 오래된 기형목 등도 그러거니와 철따라 녹음과 단풍 또한 아름다워 명승지 못지않아 들녘에서 일하는 농부들이 자연의 풍경을 감상하게 해 주어 즐거움을 선사 하고 있다. 금성쪽 벼랑 위의 연강정은 이름 높은 시인묵객이 많이 찾아 놀던 곳으로 이름 나 있었으니 우리 조상님도 이분들과 함께 얼마나 시흥에 도취하고 풍류에 해가 저무는 것도 잊었음이 아득히 회상된다. 두인보(斗印洑) 안은 호수처럼 넓게 펼쳐 수량이 풍부함을 자랑하고 옥녀봉, 노루먼당, 한복산 등은 등산 코스로 알맞은 좋은 곳이다. 산정에 올라 시원한 강바람을 마음껏 들이켜 마시면서 지저귀는 산새소리 정겹게 들으며 숲 속 길을 거닐면 자연의 품에 안긴 듯 세상만사를 다 잊어버린 심사이리라. 본촌리 구역을 제외한 전하천은 남강댐으로 편입되어 이에 따른 제방이 장장 10km이니 강기슭에 따른 산책로는 다시없는 적소이다. 항시 물이 맑고 깨끗하며 수질이 좋아 완사 전 지역의 상수도 수원 이니 아마 전국에서도 드문 정화된 수원이라 본다. 강안에 따른 전설은 상사바위, 오룡(五壟)의 승천, 옥녀의 죽음, 장사바위 등 얽힘이 많고, 서식담수어로는 뱀장어, 은어, 피라미, 잉어, 붕어, 황쏘가리, 미꾸라지, 모래무지, 송사리, 가물치, 눈치, 메기, 검정망둑, 게, 연어, 텡가리, 방개, 가재, 새우 등이 있고, 패류에는 고동, 소라고동, 갱조개, 대피 등이 있어 년중 미식가들이 많이 찾는다. 밤에는 기암괴석과 자연에 펼쳐진 꽃을 감상하며 여름에는 친구와 함께 가족 동반하여 밤을 새우며 노래하고 짙은 산의 푸름을 보면서 물놀이와 일광욕을 즐기며 가을에는 낙엽 지는 단풍을 바라보며 “민물고기 회”에 한잔 술을 벗과 더불어 기울면서 시름을 푸는 흥취는 딴 곳에서 맛볼 수 없는 곳이기도 한다.

◆두인댐 : 1928년 곤명수리조합 창설로 옛 들보를 콘크리트조로 한 것인데 전장이 225m이고 높이가 2m로 축조되어 강면(江面)의 에프론 시멘트, 바닥 주위에는 담수어가 많이 잡혀 관광의 명소로서 각광을 받고 있다.

◆두인리(斗鱗里) : 본촌리의 동남향에 위치하며 덕천강을 사이에 두고 있다. 신라시대 금능현(金陵縣) 현인(縣印)이 보관되었던 곳이라 하여 두인이란 마을 이름 유래가 나왔다 한다. 당시 현인이 사각형이었음으로 옛 양기(量器)인 말(斗)이 정사방형이라 여기에 따른 동명(洞名)이다. 청과류 산지로서 명성이 있었으나 1965년 경지정리로 거의가 수도작으로 변하였으나 아직도 많은 양이 생산되고 있다.

◆마차골 : 장신 북쪽에 있는 골짜기.

◆말바구 : 금성 북쪽에 있는 바위. 말굽자국이 있음.

◆모산골 : 장신남쪽에 있는 골짜기로서 마을을 이루고 있음.

◆목산골 : 장신 북쪽에 있는 골짜기 불곡사가 있었음.

◆벌곡 : 장신 남쪽에 있는 골짜기.

◆새터 : 장신 동쪽에 있는 골짜기.

◆시리바구 : 금성 북쪽에 떡시루처럼 생긴 바위.

◆안골 : 금성 북쪽에 있는 골짜기.

◆연강정(縯江亭) : 임진왜란 뒤 건립된 학당으로 많은 유사(儒士)를 배출하였으며 또한 명사(名士)의 시론장(時論場)으로도 오랜 전통을 갖고 있어 문화재로 지정하여 줄 것을 당국에 건의한 바 있으나 성사는 되지 않고 있다.

◆오룡(五龍) 덤 : 두인댐 안에 위치한 벼랑으로 깊은 소(沼)와 직각의 암벽이 신비를 이뤄 장관을 볼 수 있으니 이 소를 오룡소라 하며 명주꾸리 3개를 넣어도 끝이 닿지 않는다 하는 깊은 소로서 소 가운데 바위를 “용의집바위”라 하며 바위 깊숙이 암굴이 있어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금기의 지역이다. 그 옛날 다섯 마리의 용이 승천하였다 하여 오룡이란 말이 나온 것이다.

◆옥녀봉(玉女峰) : <옥녀봉에 관한 전설>

◆옥화정(玉花亭) : 장신 남쪽에 있는 이씨의 사당.

◆용바구 : 금성 북쪽에 있는 바위. 용처럼 생겼음.

◆용시봉 : 장신 남쪽에 있는 산. 용바구와 시리바구가 있음.

◆작은골 : 장신 동쪽에 있는 골짜기로 마을이었음.

◆장신(長新) : 금성리의 분리(分離)마을로서 장흥골 땀과 새터땀의 2개 마을로 합쳤으나 1957년 지방자치제시행 때 장신이라 호칭하게 된 것이다. 동쪽으로 진주시 대평면과 접해 있으며 경계의 가장 높은 봉우리가 국사봉(國師峰)이 설에 의하면 금성축성시 신라의 지리국사가 이 봉우리에서 내려다보고 덕수포룡(德水泡龍)이라 하여 터를 잡았다 하여 후인이 이 산을 국사봉이라 하고 강을 덕천강(德川江)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마을 동남향에 큰 바위가 있으니 이름이 용바위이다. 1967년 남강댐 건설로 십정보의 농토가 수몰되었으며 20여호가 이주하게 되었고 1985년 다시 5호가 추가 철거되어 리세(里勢)는 크게 줄어들었고 앞들과 현존 마을을 보존키 위하여 제방을 축조하였으니 길이가 1,200m이다. 1981년 완사와 대평을 연결하는 도로가 장신을 거쳐 국사봉(國師峰)산록을 뚫고 대평면 내촌리로 통하여 교통난이 해소된바 이에는 성찬석 이영희의 노력이 뒤따른다. 산업은 금성리(金城里)와 함께 비닐하우스 재배로 오이, 메론 등을 농한기에 동계 출하하여 많은 소득을 올리고 있다.


◆제방 : 마을과 앞들을 둘러싼 제방은 1920년 일본인 미전(尾田)과 이규필이 공동 축조로 500m거리였으나 1968년 남강댐 건설시 수해방지책으로 크게 보완하여 현재는 길이 2,000m 폭 4m이고 산책로로서 또한 교통로로서 이용되고 있다. 강변 일대에는 자갈 깔린 맑은 물과 숲으로 풍류객이 찾는 곳이 되고 특히 봄철에는 원근의 소풍객들로 붐비고 있는 곳이다. 진양호 확장으로 편입되었다.



<자료출처:사천지명지>

금성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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