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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11.28 00:23

작팔리(作八里)

◆본래 곤양군 성방면의 지역으로서 작팔동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우교동 일부를 병합하여 작팔리라 해서 사천군 곤양면에 편입됨. 작팔과 구몰 2개 마을로 형성되었다. 작문팔수(作文八首)의 문장으로 병풍형(屛風形)의 산으로 둘러쌓인 마을이라 작팔(作八)이다. 별학산의 양령이 용과 같다하여 쌍룡(雙龍)설이라 한다. 임진왜란 때 명장(明將) 이여송이 조선에 대인(大人)이 날 것을 두려워하여 혈맥을 끊었다 한다. 지금도 그 흔적이 칼로 자르듯 역연(歷然)함이 있다. “문돌방”가는 곳에 자연석 모퉁이에 정감록(鄭鑑錄) 비결이라 하여 불가해(不可解)의 문자가 새겨져 있어 많은 사람들이 이를 해석하려고 찾아옴으로써 당시 문달방 암자의 승려가 마멸시켜 버렸다 하며 지금은 문자의 형용마저 없다. 전설에 의하면 제방, 성방, 작방의 삼방지중의 쌍룡합국(雙龍合局)의 유좌묘향(酉坐卯向)이 삼성(三聖) 오현대지라 한다. 이곳에는 선인(仙人)이 독서하였다는 자리가 흡사 상(床)을 놓고 공부하는 형국이고 골짜기의 이름이 형국에 맞추어 붙여졌으니 즉, 신선이 강림(降臨) 하였다는 “강선(降仙), 곡(谷)” 배움터가 있었다는 원학당(元學堂)골, 벼루의 연석(硯石)석골, 벼루의 연수(硯水)골, 붓(筆)골, 먹(墨)골, 장지(張紙)골, 진지(晋紙)들, 글을 읽은 독(讀)골 등 8골이 있으니 혹설(或說)은 작팔 동명(洞名)이 여기에 연유라고도 한다.

◆강선골 : 신선이 내려 왔다고 지어진 지명임.

◆강섬들 : 작팔동 북쪽에 있는 들. 강성산 밑.

◆거늘 : 작팔동 북쪽에 있는 마을. 음지쪽이 됨.

◆구몰(龜沒), 기모리기 : 구몰, 새동네, 녹천(鹿川) 세 땀이 합친 부락이다. 동명(洞名) 유래는 비리고개에서 뻗은 산이 거북형이고 이 거북이 앞 시내를 보고 들어가려는 형용(形容)이라 하여 구몰이라 한다. 녹천은 벼락산(山) 북쪽에서 뻗은 산형이 사슴과 같고 그 옆을 흐르는 냇물을 “사슴내”라 하여 녹천이 되었다. 옛날 녹천 건너편에 명문대가(名門大家)가 살았다 하여 그곳이 매화낙지(梅花落地)이다. 이 앞길이 큰 보행로였는데 어느 길손이던 일단 하마(下馬)하여야 한다는 하마비(下馬碑)가 있었다. 하나 정확한 연유는 알 수 없고, 다만 하마석골이라 하여 말을 매는 돌기둥 흔적만 있다. 녹천의 일명이 매화동이라 부름도 여기에 연유된다 한다. 강선산 밑에 병산재(屛山齋)라는 서당이 6.25전까지 존속하여 후전에게 한문수학을 한 곳이다.

◆녹천 : 벼락산(山) 북쪽에서 뻗은 산형이 사슴과 같고 그 옆을 흐르는 냇물을 “사슴내”라 하여 녹천이 되었다. 작팔 북쪽에 있는 마을.

◆덕골 : 작팔동 북쪽에 있는 골짜기.

◆매화동 : 작팔동 북쪽에 있는 마을.

◆먹골 : 작팔동 서쪽에 있는 골짜기.

◆붓골 : 작팔동 북쪽에 있는 골짜기.

◆비리고개 : 80년전 국도 2호선 개설 공사 시 이 고개를 끊을 적에 산복에서 피가 나와 비린내가 진동하였다 하여 비리고개라 함.

◆새동네 : 구몰 남쪽에 새로 생긴 마을, 구몰 마을 뒷산이 수차례 산사태가 나서 위험을 느낀 주민이 새로 마련한 마을이란 뜻에서 나온 말이다.

◆석탄골 : 작팔동 남쪽에 있는 골짜기.

◆섬들 : 작팔동 서쪽에 있는 들.

◆어랑때 : 작팔동 동쪽에 있는 들.

◆작은먹골 : 먹골의 작은 골짜기.

◆절맥지(絶脈地) : 작팔리 서북간 먹골에 위치하고 있다. 예부터 작팔은 삼방지중에 삼성오현(三聖五賢)의 대지가 있다는 설이 내려오고 있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수 이여송이 조선의 지맥(地脈)을 보고 작팔리에서 대성(大聖)이 날 것이 예측됨으로 붓으로 이곳 지맥을 끊었다 한다. 칼로 자른 듯 그 흔적이 골짜기를 이루고 있어 오늘까지 이여송 절맥지라 부르고 있다.

◆진지들 : 작팔동 북쪽에 있는 들.

◆큰재 : 작팔동 남쪽에 있는 산 고개.



<자료출처:사천지명지>

작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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