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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11.27 23:53

삼정리(三亭里)

◆본래 곤양군 소곡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탑동, 방광, 서전을 병합하여, 세 마을 앞에 각기 느티나무 정자가 있으므로 세 정자의 뜻을 따서 삼정리라하여 사천군 곤명면에 편입되었다. 곤명의 최북단이며 “백토(白土)고개”를 경계로 하여 북천면 옥종면과 삼각을 이루고 있으며 속칭 곤명의 운봉이며 소재지에서 6km지점이다. 동명의 유래를 보면 서전(鼠田)은 마을 뒷산의 지형이 늙은 쥐가 동네와 들판을 내려다보는 형국이라 하여 이름 지어졌고 탑동은 고려 말에 성지사가 이 골 안에 있었고 탑이 해방 전까지 있었던 곳으로 “탑골”이라 부르게 된 것이며 방광(放光)은 백마산 일대에서 일어난 전설에서 ‘화살이 빛’을 발하였다 하여 이름 붙여졌다 한다. 삼정리(三亭里)는 마을마다 정자나무가 한 그루씩 있었으므로 동명으로 호칭된 것이다. 들 가운데 있는 원수천(源水泉) 샘물은 용출수량이 많아 삼정리를 비롯하여 은사리, 마곡리, 송림리의 농지관개의 원수가 되고 있으며 진양호로 유입되는 완사천의 기점이 되고 있다. 옛날 곤양군수가 한발에 기우제를 지낼 적에는 이 물을 제수로 사용했다고 전한다. 태봉산 아래에 널따란 바위가 있으니 이곳이 고반대(考盤臺)이다. 옛날에는 이 바위 밑을 냇물이 흐르고 맑은 물에 고기가 뛰놀며 수목이 울창하고 경관이 좋아 향중사림(鄕中士林)이 많이 거처하였던 곳이기도 하다. 삼정의 입구에는 약 50년 전에 탄맥이 발견되어 채탄을 한 바 있으나 질이 나빠 폐광되었다고 한다. 1919년 3.1운동 때 오사재(五思齋) 만세사건이 일어난 곳이다.

◆가들이 : 탑동 남쪽에 있는 산. 무연탄 광맥이 있고, 백토가 매장되어 있음.

◆고관지:탑동 남쪽에 있는 들.

◆고동따까리 : 고동처럼 생긴 바위로 탑동 서쪽에 있다.

◆기밧골 : 탑동 남쪽에 있는 골짜기.

◆까지골 : 탑동 남쪽에 있는 골짜기.

◆도독골 : 탑동 북쪽에 있는 골짜기로서 옛날에는 도둑이 많았다 함.

◆매봉재 : 삼정리 뒤에 있는 고개[복치산(伏稚山)을 넘어가는 고개]를 말하는데 산형이 꿩이 엎드려있는 것 같고 그 옆의 봉우리가 꿩을 노리는 매와 같다 함.

◆방광 : 탑동 북쪽에 있는 마을. 백마산 일대에서 일어난 전설에서 ‘화살이 빛’을 발하였다 하여 이름 붙여졌다 한다.

◆백마산 : 탑동 북쪽에 있는 산.

◆백토고개 : 서전 서쪽에 있는 마을로 고개 밑이 됨.

◆삼밭골 : 탑동 북쪽에 있는 골짜기로 옛날에 산삼을 캤다 함.

◆서정(抒情), 서전 : 탑동 서쪽에 있는 마을 뒷산의 지형이 늙은 쥐가 전답을 내려다보는 형국이라 함.

◆선지골 : 탑동 동쪽에 있는 마을.

◆옥산(玉山) : 탑동 서쪽에 있는 산. 구슬처럼 동그랗게 생겼음.

◆용수천 : 탑동 동쪽, 산기슭에 있는 샘. 옛날 곤양군수가 기우제를 지낼 때 이 물을 이용했다 한다.


◆용시바구 : 탑동 서쪽에 있는 바위로 용시와 같이 생겼다 한다.

◆원시천 : 탑동 서쪽에 있는 들. 샘이 있음.

◆원시펄 : 탑동 서쪽에 있는 진펄. 1m정도나 빠진다 함.

◆장사밭터, 조산목티 : 조산목 고개. 탑동 앞 들판에 있는 고개로서 옛날에 이 길을 지나는 사람들이 돌은 던져 산과 같이 되어 등을 이루었다 함.

◆주막거리 : 탑동 앞 서쪽에 있는 마을에 주막이 있어서 지어진 지명.

◆지시골 : 탑동 동쪽에 잇는 골짜기. 서당이 있었다 함.

◆진지리골 : 탑동 남쪽에 있는 골짜기.

◆탑동 : 고려 말에 성지사가 이 골 안에 있었고 탑이 해방 전까지 있었던 곳으로 “탑골”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학산 : 탑동 남쪽에 있는 산

◆한배미 : 탑동 북쪽에 있는 골짜기

◆황새봉 : 탑동 남쪽에 있는 산.



<자료출처:사천지명지>

삼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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